한국 주교단이 10월 17일 주교회의 2017년 추계 정기총회 개막식 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대강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올해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평신도들의 사도직 활동과 신앙 재교육을 독려하는 다양한 결정을 내놓았다. 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돕고, 그들과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방안을 제시하했다. 주교회의 산하 전국위원회 일부 조직을 개편하고 명칭을 변경한 것도 주목할 만한 회의 결과다.
이번 총회는 10월 16~19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주교회의는 우선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권길중)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요청한 ‘평신도 희년’ 거행 계획을 승인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평신도들이 각자의 소명을 자각하고 더욱 열심히 사도직을 펼쳐나가길 바라는 뜻에 모든 주교님들께서 공감하고 최대한 돕고자 한다”면서 “앞으로도 평신도들의 신앙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 한국교회 영적 성장의 동력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주교회의는 신자들이 각자 신앙생활과 교리 등에 관해 궁금해 하는 점들을 수집해 펴내고 있는 ‘신자 재교육 교리상식’ 2 「성사」 발간을 승인했다. 2015년에는 ‘신자 재교육 교리상식’ 1 「미사 전례」 발간을 승인한 바 있다. 신자들이 ‘신앙의 재무장’에 나설 수 있도록 예비신자 교리를 개편하고, 주일마다 쉽게 활용할 수 있는 5분 영상 교리도 만들기로 했다. 이 영상은 가·나·다해 3년간 매주 한 개씩 활용할 수 있도록 150여개 주제로 제작할 계획이다.
주교단은 한국교회 차원에서 올해부터 거행하는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 1년에 한 번만 마련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연중 가난한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공유하는 자리가 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각 교구별로 ‘복음적 가난’에 대해 고민하는 학술행사 혹은 모임 등을 진행하거나 경제적인 불평등 해소 방안 등을 정부에 제안하는 구체적인 활동도 이어갈 수 있다.
동시에 주교단은 농·어촌 이주민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근로기준법 제63조 등의 제도적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연대하고, 정의평화위원회와 국내이주사목위원회 활동에 협력하기로 했다. 근로기준법 제63조는 농림사업과 축산, 수산 사업 종사자 등에게는 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식,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또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해마다 교회가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사회적 약자’를 선정해 보다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실천하기로 했다.
전국위원회 활동의 폭을 넓히고 심화하기 위한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생명의 시작과 마지막은 가정 안에서 이뤄지는 만큼 이에 관한 통합적인 사목을 펼칠 수 있도록 기존 가정사목위원회와 생명운동본부는 ‘가정과 생명 위원회’(위원장 이성효 주교)로 통합했다.
복음화의 영역은 매우 넓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말씀 선포다. 이에 따라 주교단은 국내에서 직접 선교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아 기존 복음화위원회 명칭을 ‘복음선교위원회’로 바꿨다.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 위원회’ 또한 신자들이 순교신심을 더욱 고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분리, 신설했다. 관련 위원회는 기존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산하에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를 두고 있었다. 정의평화위원회가 운영하던 노동소모임은 승격시켜 산하 ‘노동사목소위원회’로 신설했다.
매스컴위원회는 그 활동 폭을 넓히는 의미에서 명칭을 ‘사회홍보위원회’로 변경했다. 각 교구 홍보국 등과의 연계를 더욱 원활히 이어가도록 앞으로 위원회 총무는 주교회의 홍보국장이 당연직으로 맡는다. 문화위원회도 활동 영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위해 ‘문화예술위원회’로 개칭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전례위원회(위원장 김종수 주교)가 제출한 「가톨릭 기도서」(개정안)를 승인했다. 이 기도서는 새 「로마 미사 경본」과 「미사 독서」, 사도좌의 추인을 받은 예식서들의 전례문을 반영해 개정했다.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바쳐 온 ‘구원을 비는 기도’는 그대로 싣기로 결정했다.
내년 8월 서울대교구가 여는 제4회 한국청년대회 참가 대상은 ‘만16세(고1)부터 39세’로 확대했다. 세계 및 아시아 청년대회와 달리 기존 한국청년대회에는 고등학생들이 참가할 수 없었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위원장 정순택 주교)는 청소년과 청년 사목의 활성화를 위해 대회 참가자 폭을 넓히는 방안을 제안했다.
세계 자비의 사도직 대회와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와의 연락을 담당할 주교로는 배기현 주교(마산교구장)를 선출했다. 202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제52차 세계성체대회 한국 대표로는 장신호 주교(대구대교구 총대리)를 선출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한국교회 소개 리플릿을 우리말을 포함해 총 8개국어로 제작, 배포한다. 이 리플릿에는 한국교회 역사와 교세, 교구 및 주교회의, 오늘날 한국교회 모습에 관한 설명을 간략히 담아, 국내·외 행사 혹은 성지 및 기관단체 등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주교회의 의장 연임 김희중 대주교
“전쟁은 공멸 뿐… 지금의 위기 회복 위해선 ‘평화 협정’ 반드시”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이들과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공유하는 소명 실천에 더욱 힘써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는 ‘주교회의 2017년 추계 정기총회’ 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는 교회가 하고 싶은 일보다, “국민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충분히 듣고, 교회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떤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찾아 실천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교회는 사회병리현상 등에 대해 단순히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앞으로는 보다 영성적인 면, 정신적인 면, 문화적인 순기능을 고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주교는 이번 총회에서 주교회의 의장으로 재선출됐다. 이에 따라 의장으로서 앞으로 3년간 교회 대내외적인 활동을 펼쳐나간다.
특히 김 대주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현안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3자가 아닌 남북한 관계자들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그 대화에 전제조건을 달아선 안 된다고도 조언했다. 예를 들어 “대화하는 목적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인데 먼저 핵을 포기해야 대화를 하겠다고 전제조건을 단다면 대화 자체는 필요 없게 된다”면서 “대화는 전제조건 없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나누고 이해하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논의하는 장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주교는 평소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우선 평화 협정을 통해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전쟁의 위험이 없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을 꾸준히 해왔다. 일부 정치인들이 ‘전쟁을 불사한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모습에 관해선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대주교는 “전쟁에서 절대 선은 살아남는 것이고 이기는 것이 된다”면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 어떤 것도 용인되기에 인간 존엄성과 품위, 윤리 등은 철저히 파괴되고 그것은 누군가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의 공멸이 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김 대주교는 “물질적인 가난은 나눔으로써 해결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가난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영적 성장을 이룰 때 채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국교회의 쇄신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초기 교회 모습을 돌아가야 한다”면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정해주시는 기도를 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개개인이 가난한 자, 즉 영적으로 하느님의 도움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