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내 친구 정일우
가난을 ‘벗’으로 선택한 복음의 삶 들여다보다
판자촌서 쪽방 생활하며 평생 힘없는 철거민 도와
“신부님 추구하시던 가난, 이 세상 밝은 불빛 될 것”
‘가난한 이들의 영원한 친구’로 불리던 고(故) 정일우 신부(John Vincent Daly·1935~2014)가 영화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10월 26일 개봉한 영화 ‘내 친구 정일우’는 197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가 가난한 이들 곁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친구가 된 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내레이션은 예수회 한국관구 전주희 수사를 비롯해 평생 동지였던 고(故) 제정구 의원의 부인인 신명자(베로니카)씨, 충북 괴산에서 함께 농사를 지었던 김의열 농부, 김동원(프란치스코) 감독 등이 맡아 저마다 가진 기억을 풀어놓는다.
영화 ‘내 친구 정일우’ 중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생전의 정 신부 모습. 영화사 시네마달 제공
■ 사랑은 함께 하고픈 열망
온 동네를 잔칫날로 만들었던 개구쟁이, ‘복음자리’라는 이름의 딸기잼을 만들어 판 수익금으로 철거민들을 지원한 민중의 벗, 평생을 빈민과 함께한 ‘판자촌의 예수’, 모든 것을 초월해 사랑을 나눈 파란 눈의 신부,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사회운동가….
그를 추억하는 수식어는 다양하지만 김 감독은 그를 ‘친구’로 그려낸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 예수회 신학생 시절,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처음 한국 땅을 밟는다. 앳된 청년은 1963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사제품을 받고 4년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평생을 산다.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하던 1972년에는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잡혀간 학생들을 위해 단식 투쟁을 했다. 학교를 뛰쳐나와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 간 건 1973년. 이 때부터 그는 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쪽방에서 생활하며 그들 곁에 머무르고 사랑을 실천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그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로 꼽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김 추기경이 부서진 건물 잔해와 먼지로 가득한 철거 현장을 방문해 그를 위로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김 추기경은 정 신부 환갑잔치에 참석해서는 “나도 환갑 안 치렀는데 무슨 염치냐”며 친근한 핀잔을 주기도 한다. 좋은 친구에게 에둘러 전하는 축하인사였다.
■ ‘가난’은 선택할 수 있는 가치
때론 답 없는 철거 현장에서 남몰래 시멘트 벽 뒤에서 숨죽여 울기도 했지만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는 미사 도중 눈물 콧물 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이 나라의 희망은 여러분에게 있다”면서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한다.
상계동 철거 현장에서 처음 정 신부를 만난 김 감독은 “가난했기에 우리는 친구가 됐다”면서 “그는 가난을 즐기면 더 가난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20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시대의 기록이기도 한 신부님의 삶은 종교를 넘어 현대 사회에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면서 “아득한 옛날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신부님이 추구하던 ‘가난’이 이 세상에 밝은 불빛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요한 사도)씨는 “다큐는 그 속에 인간의 모습이 담겨 감명을 받고 오래 인상에 남는다”면서 “이 영화도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신부님 세례명이 저와 같아 기분이 괜히 좋다”면서 “특히 신부님 무덤에서 노래 부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고 밝혔다.
상영시간 84분.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