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 (상)
“남북 화해,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는 인내가 필요”
올해 포럼엔 브라질, 엘살바도르, 멕시코 등 중남미 교회 성직자들 참가
각국 교회, 지난 독재정권 아래 폭력과 분쟁 해결 위해 노력한 경험 소개
“평화는 정의의 열매”… 국제관계 전문가들 용서와 화해로 나아갈 것 강조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가 주최하고 평화나눔연구소가 주관하는 ‘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이 11월 3~4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을 주제로 열렸다. 포럼에는 분쟁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몸소 느낀 남미 국가의 성직자들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평화의 경험’을 나누고, 용서와 화해에 대해서 논의했다. 더불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모았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11월 4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마련한 ‘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제1회의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루 뻬드루 쉐레 추기경이 ‘평화의 뿌리는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본회의에 앞서 11월 3일 열린 전야제에서는 포럼 참석자들뿐 아니라 신학생들이 함께해 ‘평화나눔포럼’의 개막을 축하했다. 전야제에서 벨기에 겐트교구장 루카스 반 루이 주교(Loc van Looy)는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한반도의 일치에 대해서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화해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기도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며, 성령에게 한반도 일치와 화해를 맡기면 한반도의 평화로 다가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명균(안드레아) 통일부 장관도 “평화의 사도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힘을 주시길 바란다. 단절된 남북의 아픔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제1회의 ‘삶의 길: 화해와 치유’, 제2회의 ‘나눔의 길: 평화의 실천’, 제3회의 ‘하나됨의 길: 한반도의 미래’ 등 총 3회의로 구성됐다. 제1회의에서는 분쟁을 경험한 국가의 해외 성직자들이 아픔과 상처를 넘어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들은 분쟁의 아픈 경험을 나누면서, 평화를 이룩하는데 있어 교회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발표했다. 제2회의는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타국가의 화해와 나눔을 통해 평화를 이룩하는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제3회의는 한반도의 미래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해 ‘하나’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기조연설에서 ‘평화는 정의의 열매입니다’(이사야 32,17)를 주제로 발표했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로운 질서란 단순한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며 “하느님이 주고 가신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고, 시민 생활의 공동선이 보장될 때 평화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포럼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와 한국 가톨릭교회는 다시 한 번 연대와 공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두 교회가 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적 가치는 정의와 평화를 향한 발걸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 제1회의 ‘삶의 길: 화해와 치유’
브라질 상파울루 대교구장 오질루 뻬드루 쉐레 추기경(Card. Odilo Pedro Scherer)은 ‘평화의 뿌리는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쉐레 추기경은 브라질의 정의와 평화를 설명하면서 “1964년부터 1982년까지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폭력이 드러났을 때 브라질 주교회의는 권력남용과 인권침해를 명백히 고백했다”고 말했다. 이어 브라질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유익을 위한 자선활동을 통해 사회적 평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한다고 밝혔다. 또 “평화는 하느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며 “폭력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이 존재할 수 없으며,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폭력은 결코 평화에 기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적인 갈등을 해결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갈등의 기원을 찾아 주어진 원인들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주교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Card. Gregorio Rosa Chavez)은 ‘생명의 길: 화해와 치유’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엘살바도르는 거의 50년동안 군사독재 하에 살았다며, 1970년대에 이르러 억압은 극대화되고 암살단들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가 전례 중 암살당했던 사건을 상기시켰다.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인 대화가 시작되고 1992년 1월 16일 멕시코시티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기까지의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화해’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접근했다. “화해라는 것은 미묘하고 근본적인 무언가와 관계돼 있다. 그것은 전쟁으로 인해 난폭하게 찢긴 사회라는 직물을 재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교회는 진실, 정의, 용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과거의 기억들을 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멕시코 모렐리아대교구장 카를로스 가르피아스 메를로스 대주교(Archbishop Carlos Garfias Merlos)는 ‘교회의 사명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정의와 평화를 증진시키는 것이다’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메를로스 대주교는 아카폴코와 모렐리아대교구의 평화구축 사업을 설명하며, 멕시코의 이행기 정의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소개했다.
그는 멕시코는 폭력 때문에 상처를 입고 있다며, 2010년부터 시작된 사업은 멕시코 사회의 현실과 더불어 믿음 공동체의 현실에 대한 사목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지난 40년간 인권 침해와 폭력의 피해자가 된 모든 이들과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메를로스 대주교는 평화를 위한 기도, 평화를 위한 교육, 평화구축을 위한 교회와 사회의 연결전략 및 다양한 평화구축의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평화구축은 열정과 성찰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 성찰과 연구작업을 통해, 멕시코와 우리 주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불안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야 한다. 가장 복잡한 분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2회의 ‘나눔의 길: 평화의 실천’
한국외국어대학교 신정환 교수는 ‘한국과 중남미 가톨릭교회: 복음과 정의의 나눔’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그는 중남미 가톨릭교회와 한국 가톨릭교회의 관계성에 대해 밝히며, 각자의 문화와 전통에서 발견된 영성을 나누고 연대를 구축해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그리스도교 신앙 전파에 있어 남아메리카와 한국의 가톨릭은 반대 방향의 근대적 기제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공통점으로 모두 피로 얼룩진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지는 혁명적 의미는 가톨릭교회가 유럽 중심에서 지역중심적 교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라며 이는 중남미 대륙과 한국이 교회의 변방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체들 가운데 하나가 됐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변방과 변방, 타자와 타자의 만남에서 이뤄지는 연대와 소통은 구체적으로 신앙의 선물과 정의의 선물의 형태로 구현된다”고 밝혔다. 또 각자의 전통에서 발견된 영성을 나눌 때 깊은 연대를 통해,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전 교황청 대사인 비센떼 에스페체 힐(Vicente Espeche Gil)은 ‘1976-2017 사이의 아르헨티나: 분쟁, 원망, 화해 그리고 만남’에 대해서 발표했다. 에스페체 힐 대사는 “화해는 분쟁으로 인해 균열된 사람 간 형제애를 포괄하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과정”이라며 “통일은 정치적인 과정을 의미하며 화해와 통일의 과정은 동시에 이뤄질 수는 있으나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자신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었음을 인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우리는 화해를 이루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시간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보고타 법과대 학장 겸 총장, 전 콜롬비아 헌재 소장인 호세 그레고리오 에르난데스 갈린도(Jose Gregorio Hernandez Galindo) 소장은 발표문을 통해 ‘평화, 관용과 분별력이 요구되는 과정’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그는 ‘평화’를 공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라고 생각하며,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평화는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 한 사람의 자세, 준비, 신념, 의지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평화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며 가치와 원칙이 전승되지 않으며 아동과 청소년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중매체의 사회적 책임 없이, 종교단체의 영적인 지도 없이, 국가의 지원 없이는 평화가 실현되지 못한다고 역설했다.
11월 4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열린 ‘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에 참석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해외 성직자들이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 제3회의 ‘하나됨의 길: 한반도의 미래’
한양대학교 홍용표 교수(전 통일부 장관)는 ‘하나됨의 길: 평화문화의 확산’을 주제로 발표했다. 홍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평화에 대한 논의는 인류 보편적 가치보다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평화문제에 집중돼 있으며 “평화에 대한 편협성은 인권과 평화에 대한 논의에서도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 인권문제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대한 국제적 논의에 동참하고 평화통일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강원택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와 민주주의 미래’를 통해 한국 사회의 균열과 갈등에 대해서 논의했다. 강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 원인을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정당 정치가 새로 부상한 사회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갈등의 중층화-한국 사회의 균열은 정당 정치로 해소되기보다 추가적으로 축적시켰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중앙집권 구조가 계속 유지된 점을 꼽았다.
강 교수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심각한 분열이나 대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인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결방안으로 “1인 선거구 단순다수제 방식의 선거제도로부터 보다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 번째 발표자로는 ‘한국 사회 이주민의 이해와 제언’를 주제로 남양주외국인복지센터 이정호 신부(대한성공회)가 나섰다. 이 신부는 한국 사회는 이제 ‘다문화다민족사회’에 접어들었다며 한국 사회는 이주민들이 포섭과 통제, 배제된 것을 해결하고 ‘사회통합 포용의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문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보다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포럼의 마지막 발표자인 벨기에 겐트교구장 루카스 반 루이 주교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발표했다. 그는 “남북한이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으나 형제 자매처럼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공선을 위한 교육’을 주장하면서 젊은이들이 화합과 평화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교육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상덕·권세희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