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사회사목 결산
정의와 평화 외치며 슬퍼하는 이들 눈물 닦아주다
평화협정 체결 필요성 공론화
DMZ 순례·학술심포지엄 등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위한 노력
20대 국회서도 사형폐지法 발의 추진
인권과 정의 향한 행보 이어가
4·16재단 설립 등 의견 나누기도
2017년 한 해를 헤쳐 온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돌아보며 어떤 주님의 뜻을 되새겨야 할까. 희망의 불씨마저 사그라져 가는 듯한 암울한 시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고자 했던 한국교회가 걸어 온 길을 되짚어 본다.
■ 평화는 정의의 열매
2017년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북한이 9월 3일 감행한 6차 핵실험을 비롯해 올해 들어 2월 12일을 시작으로 18차례나 이어진 미사일 발사는 얼마 남지 않은 평화의 샘마저 말려버리려는 듯 보였다.
전운이 짙어질수록 교회는 평화가 주님의 뜻임을 소리 높여 외쳤다. 남북으로 갈라진 후 70년 넘게 한반도를 지배해온 안보 이데올로기, 주님에게서 흘러나온 평화의 물줄기가 스며들며 ‘색깔론’으로 무장한 철옹성도 한 자락씩 무너져내렸다.
평화를 향한 첫 관문은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열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 이하 서울 민화위)가 8월 14~20일 6박7일간 마련한 ‘2017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에 참가한 청년들은 평화의 마중물이 됐다. 시리아, 동티모르, 캄보디아 등 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18개국 분쟁지역에서 온 해외 참가자 26명 등 100여 명은 강원도 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 등 DMZ 일대를 순례하며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
올해는 또 한국교회가 지닌 역량과 비전을 십분 발휘해 전례 없이 평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힌 해로 기억될 만하다. 그 첫걸음은 서울 민화위가 뗐다. 민화위는 11월 3~4일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을 주제로 ‘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을 열었다. 포럼에는 분쟁을 경험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몸소 느낀 남미 교회 성직자들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혜를 모았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도 12월 1일 경기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을 주제로 제1회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세계 각국 가톨릭 평화운동가들이 모여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에 앞서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회장 이영자 수녀)와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회장 호명환 신부)는 9월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반전반핵 한반도 평화 미사’를 봉헌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했다.
8월 14일 시작한 2017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
9월 25일 남녀수도회 ‘반전반핵 한반도 평화미사’ 봉헌
■ “사드 추가배치 규탄”과 평화협정 공론화
한국교회는 정부가 9월 7일 경북 성주 소성리에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배치를 강행하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8월 29일 회의를 열고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실험은 물론 이를 빌미로 한반도에 군사적 무장을 증강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조짐이 보이자 한국교회는 누구보다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다. ‘색깔론’으로 덧씌워진 평화 담론을 빛 속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기헌 주교)는 2017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을 기념해 6월 1일 의정부교구 일산성당에서 ‘한반도 분단, 이제는 평화체제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자리였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7월 28일 평화협정의 의미 등을 담은 책자 「한반도 평화협정 이것만은 알자!」를 발간해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9월 13일 5대 종단 종교인들 사드 추가 배치 당시 폭력진압 규탄
■ 생명 문화 건설을 위한 발걸음
사형제 존폐 문제는 이제 국제사회에서 별다른 논란거리도 되지 못한다. 문명국가인지를 가늠하는 잣대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2006년 유엔 인권이사회 출범 때부터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운 역사의 장막을 걷기 위한 교회의 걸음은 올해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집행이 이뤄진 후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 20년을 맞아 사형제도 폐지를 향한 걸음에도 힘이 실렸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이하 사형폐지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피델리스·59·대전 전민동본당) 국회의원과 함께 6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사형제도 완전 폐지를 위한 국회·종교·사회·인권단체 간담회’를 열었다. 현역 국회의원을 비롯해 4대 종단 성직자와 사회·인권단체 대표들이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사형제도 폐지 법안 발의를 위해 각 종단별로 사형폐지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제20대 국회 차원에서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 발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 사형폐지의 날’(10월 10일)을 맞아 사형폐지위원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사형집행중단 20년·제15회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식’을 열고 사형제도 폐지의 당위성을 외쳤다. 이날 행사에는 교회 관계자들을 비롯, 불교 개신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종교인들과 정세균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이상민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참여연대, 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함께했다.
유흥식 주교는 이날 행사에서 “우리나라가 사형제를 폐지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메시지가 한국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히고 “제20대 국회가 사형폐지 법안을 발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헌법 개정과 법안 심의 과정에서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사형폐지위원회는 11월 2일 서울 마포 폼텍웍스홀에서 ‘대한민국, 사형 집행 중단 20년 세미나·콘서트’를 열었다. 이어 12월 15일 의정부교구 일산 백석동성당에서 ‘사형제도 폐지 기원 생명 그리고 이야기 콘서트’를 열고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목소리를 모아냈다.
11월 2일 열린 ‘대한민국, 사형집행 중단 20년 사형폐지 세미나·콘서트
■ 인권과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행보
인권과 정의를 향한 한국교회의 행보는 올해도 멈추지 않았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가톨릭농민회 광주대교구연합회 관계자들과 함께 7월 27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 고(故) 백남기(임마누엘) 농민 생가를 방문해 부인 박경숙(율리아나)씨를 위로하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황경원 신부)는 10월 14일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거치장 등에서 ‘2017 인권생명평화기행’을 실시했다. 참가자들은 목포신항 컨테이너 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광주대교구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11월 18일 영결식을 치르고 목포신항을 떠남에 따라 11월 17일 신항 컨테이너 성당에서 마지막 세월호 미사를 봉헌했다. 광주대교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했으며 2016년 8월부터는 참사가 발생한 수요일마다 미사를 봉헌했다. 세월호가 인양된 4월 이후엔 목포신항으로 자리를 옮겨 매주 수·금요일과 주일에 미사를 봉헌했다. 또한 교구 차원에서 십자가의 길, 9일 기도, 성체조배 책자를 발행하고 관련 특강, 순례 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또 김희중 대주교는 12월 4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4·16연대 상임위원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박래군 상임대표 등과 면담을 갖고 ‘4·16재단’ 설립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대주교는 “기회가 되면 대통령께 ‘세월호 4·16 안전공원’ 건립과 관련한 유가족들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11월 17일 마지막으로 봉헌된 목포신항 세월호성당 미사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