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의 평화
참 평화, 힘의 균형 아닌 ‘공동선과 형제애 실천’으로
종교인 10명 중 7명 ‘마음 평화’ 위해 신앙생활
주관적·개인주의적 종교관 머물러 있기 때문
평화는 하느님 창조질서 유지될 때 실현 가능
무력으로 통제되는 공포의 균형은 거짓 평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형상을 이루듯,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참 평화는 끊임없이 인류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고 형제애를 실천해야만 이룩할 수 있다.
■ 왜 평화인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종교를 믿는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종교인 10명 중 7명은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한국갤럽)가 2015년 1월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1984~2014’ 보고서(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대부분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종교를 갖는다고 한다.
1984년부터 2014년까지 30년간 한국인들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변화를 비교한 이 보고서를 보면, 약간의 등락은 있지만 70% 안팎의 종교인들이 1순위로 ‘마음의 평화’를 꼽았다. 이 결과만 보면 종교의 존재 목적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 십상이다.
또 이들 가운데 70% 가량이 ‘여러 종교의 교리는 결국 비슷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니다’고 응답한 비율은 24%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는 가톨릭 신자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가톨릭신문사가 1987년 창간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제1차 조사를 시작으로, 1998년과 2007년, 2017년 등 10년을 주기로 진행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설문조사에서도 ‘천주교에 입교하는 동기’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가 늘 첫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13년 이뤄진 ‘천주교 의정부교구 설립 10주년 기념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의외로 ‘구원을 얻기 위해’(4.6%), ‘천주교회의 사회활동을 보고’(2.6%), ‘가톨릭 교리를 알기 위해’(2%) 등은 미미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과 생각을 지닌 이들이 얻고자 하는 ‘마음의 평화’란 무엇일까.
이는 냉담교우들이 교회에서 멀어진 이유를 분석함으로써 추론해볼 수 있다.
가톨릭신문사가 2017년 창간 90주년을 맞아 실시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조사에 따르면, 냉담교우들은 ‘성당에 나오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생계(직장)나 학업을 위해’(44.4%)서라고 밝혔다. 이어 ‘신앙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16.2%), ‘성직자·수도자에 대한 실망’(5.7%), ‘가족 간 종교 갈등’(5.4%), ‘고해성사에 대한 부담’(3.8%), ‘본당교우와의 갈등’(2.5%), ‘종교는 다 같다고 생각해서’(1.9%) 등을 꼽았다.
한 마디로 자신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리던 ‘마음의 평화’가 어떤 외적 요인에 의해 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보면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우리나라 종교인들의 종교관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신앙인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많은 지표들은 교회에 도전이 되고 있다.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준 참 평화의 의미를 회복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회복해야 할 ‘그리스도의 평화’
-‘정의와 평화는 동전의 양면’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그리스도는 당신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를 분명히 구분했다.
예수님 당시 세상의 평화는 로마제국에 의해 유지되는 평화였다. 제국이 지닌 무력을 바탕으로 철저히 통제되고 억압된 평화였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압도적 힘의 우위나 이른바 ‘공포의 균형’으로 유지되는 평화다. 모두 군사력이 전제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Gaudium et Spes·1965)은 군사력으로 유지되는 ‘세상의 평화’에 대해 “군비 경쟁으로 전쟁의 원인들이 제거되기는커녕 오히려 증대될 수밖에 없다. (…) 국제 분쟁이 진정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번져 가고 있다”(81항)고 밝힌다. 아울러 “짓누르는 불안에서 세계를 해방시켜 참 평화를 회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주님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대척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주님이 남기신 참 평화는 로마제국의 무력으로 유지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마의 평화)나 오늘날의 ‘팍스 아메리카나’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드러나는 파스카 신비의 가장 큰 결실이 ‘그리스도의 평화’라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전해야 할 평화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실현되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창조질서를 구현하는 평화는 하느님 정의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정의와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남기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인류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고, 형제애를 실천해야 한다. 교회는 이를 위해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정했다.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은 1968년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하면서 “평화란 생명과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지닌 가장 높고 절대적인 가치”라고 강조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당신이 남기신 참 평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북돋우기 위해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평화의 부재로 고통 받는 형제를 찾아 나서길 재촉하신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