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입니다.”, “저는 중고등부 주일학교를 꾸준히 다녔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고, 돌고 돌아 20살 때부터 어색하고 낯설게 성당에 나오기 시작한 저로서는 늘 부러운 말들이었습니다. 때론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더 오래 신앙생활을 했던 청년들 사이에서 괜히 기가 죽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신앙생활 안에서도 세상 속에서 흔히 말하는 연차를 매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신기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누구보다 뜨겁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알고 보면 성인이 돼서 세례를 받았거나 혹은 이제 막 세례를 받은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늘 제가 아는 것도 경험도 별로 없어서라는 이유로, 성경공부나 피정을 권하는 분들에게 아직은 아니라고 답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기한 사람들은 너무 적극적으로 성경공부도 시작하고, 피정도 다녀오고, 본당에서 함께하는 많은 활동들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여줬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적극적이게 만들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때론 제 마음까지 아프게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고 다양한 활동들에도 적극적이었던 사람들 중 몇몇은 여러 가지에 지쳐 이제 더 이상 새로움은 없다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매년 하는 행사인데 저번처럼 하면 되지 뭐하러 유난스럽게 준비하냐”,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냐”, “나는 이제 오래 해서 그만둬야겠다.” 분명 한때는 누구보다 뜨거웠을 그들을 이렇게 지치게 만든 게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생각이 함께 들다 보니 신앙생활이란 것도 우리의 일상처럼 시작할 땐 설레지만 차근차근 설렘이 아닌 일상이 되고 그걸 넘어가면 지침과 슬럼프가 되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힘이 빠졌습니다. 나도 언젠간 지쳐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옛날엔 그랬지란 생각을 하며 간간이 미사만 맞춰나가게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좋은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우리의 삶이기 때문에 때론 뜨거웠다가, 행복했다가, 상처받았다가, 가끔은 지치기도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의 변화는 “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신앙생활 주기 안에서 같이 계셨다가 안 계셨다가 하시는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막의 강물과 길을 내시는 우리 하느님께선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지 않고 예전에 행한 모든 일 생각지 않으시고 다시 하느님께로 몸을, 마음을 돌리는 이들에게 언제나 같은 자리에 때론 더 크게 다시 또다시 새로운 힘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턴 신앙생활은 누가 오래 했냐 누가 많이 했냐가 아니라, 누가 다시 하느님께 새로운 힘을 받기 위해 하느님을 찾고 만나는가, 진짜 하느님과 나 자신이 만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