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군종교구 육군 동해본당 주임 강철호 신부
“최전방 병사들 맘속에 평화가… 절실한 마음으로 달려가죠”
북한군 귀순 소식에 긴장감 흐르고 검문소에선 냉기마저
대치의 현장 찾은 강철호 신부는 병사들에게 늘 당부한다
“5분만 자신을 돌아보라, 그러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12월 21일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 시작되는 강원도 고성군 냉천리 검문소에는 이날따라 유독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불과 몇 시간 전인 오전 8시4분 즈음 경기지역 중부전선에서 북한군 초급병사 1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했다는 소식이 동부전선을 책임지는 육군 제22보병사단에도 전파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군이 월남하는 병사를 뒤쫓는 북한군 추격조를 향해 경고사격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냉천리 검문소에서 출입자들의 신분확인을 하는 경계병들 사이에서는 냉기마저 흘렀다.
■ 험한 산길을 달려가는 군종신부
이날은 군종교구 22사단 동해본당 주임 강철호 신부가 건봉산 TOC(Tactical Operation Center·지휘소)와 내륙 3, 4 통합 GOP소초를 위문 방문하기로 한 날. 강 신부와 군종병 김동휘(베드로·수원가톨릭대 신학생) 상병은 병사들에게 나눠줄 햄버거와 음료수 등을 차에 싣고 동해성당에서 40분을 달려 오후 1시30분 무렵 냉천리 검문소에 도착했다. 군종신부라도 신분확인에는 예외가 없다. “군종장교 대위 강철호.” 강 신부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22사단이 위치한 강원도 고성 지역은 6·25전쟁 당시 한국군 5, 8, 9사단, 미군 10군단, 북한군 5개 사단이 16차례나 점령지역을 뺏고 뺏기는 처절한 공방전을 벌인 곳이다. 냉천리 검문소 바로 위로 고즈넉하고 태평하게 자리한 천 년 고찰 건봉사 역시 6·25전쟁 중에 640여 칸이 전소됐다가 1990년대에야 복원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강 신부가 손수 차를 몰아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신학생 시절인 2005년 경남 창원 탄약창에서 보급병으로 군생활 하던 때가 뇌리를 스쳤다. 군종장교로 2016년 7월 임관한 강 신부가 최전방 소초에 위문을 가는 느낌은 남다르다. 22사단 전방 소초를 천주교, 불교, 개신교 3개 종파 군종장교들이 매주 방문해도 사단 내 모든 소초를 찾아가는 데는 8개월이나 걸린다. “한 번 만난 소초 병사들과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하기 어려워 30분 남짓의 만남에서 병사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심어줘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건봉산 TOC로 향하는 산길 입구에 ‘4륜 구동 전환, 저속 기어 사용’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산길이 워낙 험하고 급하게 굽이 돌아 4륜 구동 차량이 아니면 운행 중 차가 힘이 부쳐 올라가지 못하거나 기능이상이 나타나기 십상이기 때문. 통행로 양 옆에는 1미터 가량 높이로 빨간 경고 깃발을 연속해서 세워놓았다. 급커브를 돌다가 차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일정 간격으로 제설 장비가 비치돼 있는 모습도 낯설었다. 눈이 내리면 최전방 소초는 삽시간에 외부세계와 단절될 수 있어 즉각적인 제설 작전을 위해서다.
덜컹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오직 겹겹이 둘러싸인 산, 그리고 산…. 산골짜기에는 듬성듬성 촌락이 눈에 띄었다. 고지대에서 갑작스레 몰아치는 돌풍이 차체를 흔들어댔다. ‘휭’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수시로 귓전을 때렸다. 그렇게 첫 목적지인 건봉산 TOC에 도착하자 기물을 들고 나르는 건장한 병사들의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와 찬 공기를 녹였다.
12월 21일 오후 내륙 3, 4 통합 GOP소초를 방문한 강원도 고성 육군 제22사단 동해본당 주임 강철호 신부(가운데)가 병사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 ‘평화’의 사도라는 사명감으로
군종신부가 이토록 험한 길을 달려 세상과 떨어진 산골 깊숙한 곳까지 병사들을 찾아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6년 4월 21일 반포한 「군인 사목에 관한 교황령」(Spirituali militum curae)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평화’다. 강 신부도 특히 전방 병사들에게 평화의 가치가 중요함을 느끼고 있다. “제가 군생활 한 후방과 전방은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전방 소초 병사들은 경계근무를 서느라 잠을 편히 못 자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합니다. 병사들의 피곤한 모습을 보면 딱하고 안쓰러워 제가 그들을 위문하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평화를 느끼게 해주려 노력합니다.”
강 신부는 건봉산 TOC 식당에 모인 병사들에게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간식을 부지런히 나눠주며 “우선 드셔”라고 말했다. “감사합니다!”라는 우렁찬 합창이 터져 나왔다. 먹을 것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에게 베풂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고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위문 효과가 크다는 것이 강 신부의 사목 방침이다.
강 신부가 병사들을 만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북녘땅을 바라보고 외곽 경비를 서는 병사들은 한겨울의 칼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전방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평화의 파수꾼’이었다.
강 신부는 최전방 부대 중에서도 힘들게 군생활하는 것으로 소문난 22사단 병사들에게 “여러분의 희생이 있기에 부모님과 여자친구, 주변 지인들이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가톨릭신문사 주간 이영탁 신부(오른쪽)가 12월 21일 강철호 신부와 전방 소초를 함께 방문한 뒤 강 신부에게 후원금 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 먼저 베푸는 데서 평화가 온다
현역 대위 신분인 강 신부는 남북 관계나 정치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남북한의 평화를 위해서도 남한이 북한에 마음을 열고 지원하면 북한도 남한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텐데 북한이 먼저 달라진 모습을 보이라고 요청하니 남북 관계가 평화롭지 못하다”는 지적에 “맞는 얘기 같다”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건봉산 TOC 병사들 가운데 유독 눈을 크게 뜨고 강 신부의 말에 정신을 집중하는 병사가 있었다. 건봉산대대 군종병 윤현준(대건 안드레아) 상병이다. 가슴에 천주교 표시를 단 군종병이라고 하지만 최전방을 지키는 병사들은 소초와 소초 사이 거리가 멀고 천주교 신자들이 한 자리에 좀처럼 모일 수 없어 미사를 드릴 수 없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윤 상병은 “천주교 신자 병사들과 성경을 함께 읽으며 각자의 소감을 나누거나 묵주기도를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군인으로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기도 하지만 평화를 지키는 사도라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며 “나와 함께 군생활 하는 동료들과 우의 있게 지내고 그들을 보살펴 주는 것도 평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밝혔다.
건봉산 TOC 위문을 마친 강 신부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15분 거리인 내륙 3, 4 통합 GOP소초로 움직였다. 이동 중에 난데없이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차를 가로막고 어슬렁거리다 태연하게 자취를 감췄다. 남북한이 대치한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보존된 자연의 평화는 인간에게 평화의 참 가치와 소중함을 웅변하는 듯했다.
강 신부는 내륙 3, 4 통합 GOP소초에서도 병사들이 간식을 먹기 기다렸다가 “자신의 감정과 화를 다스리기 위해 하루에 5분만 화장실에서 또는 담배 필 때, 자기 전에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당부했다. 강 신부는 한 사람의 평화를 찾는 ‘5분의 성찰’을 통해 모든 인간 사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날 중대원들과 함께 내륙 3, 4 통합 GOP소초를 찾은 중대장 곽동현(요한 사도) 대위는 “군종신부님이 발길이 닿기 힘든 전방 소초까지 찾아와 주셔서 정말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며 평화의 파수꾼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강 신부와 소초 방문에 동행한 이영탁 신부(가톨릭신문사 주간)는 “우리나라 가장 힘든 부대에서 가장 열심히 군생활 하시는 강철호 신부님과 여러분들을 만나 반갑다”며 “군번보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글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