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평화를 지키는 것은 무기가 아닌 사랑입니다”
남북 대결 구도 벗어나기 위해선 ‘평화협정’ 체결 필요
군비경쟁에 낭비되는 자원, 가난한 이들에게 쓸 수 있어
평화를 절실한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 현실도 문제
신자들, 본당에서부터 남북 화해 중요성 깨달아야
평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이뤄낸 평화를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70년 넘게 이어온 남북 분단의 역사, 모순으로 점철된 역사가 여전히 삶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지금도 ‘평화롭지 않은 평화’가 참 ‘평화’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평화는 힘에서 나온다’는 명제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이 단적인 증거다. 침탈과 저항의 역사는 ‘힘’을, 폭력을 동반한 ‘무력’으로만 인식하게 했다. 그 밑바닥에는 ‘이해’의 부족, ‘사랑’의 결핍이 있었다.
2018년은 가톨릭신문이 창간 100주년을 향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는 해다. 2017년 창간 90주년을 힘차게 보낸 가톨릭신문은 교회와 함께해 온 지난 여정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며 ‘평화의 사도’를 자임하기로 했다. 그만큼 세상에 평화가 절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주님이 몸소 이 땅에 오신 지 2000년을 넘어섰지만 그분께서 주고가신 평화는 요원한 듯이 보이는 까닭이다. 하지만 전운이 가득한 이 땅 곳곳에서는 ‘평화의 사도’로 평화의 홀씨를 퍼뜨리고 있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그들이 있어 ‘주님의 평화’가 빛을 잃지 않는다. 그 첫 주자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를 12월 21일 광주대교구청에서 만났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사진 정다빈 수습기자
■ 한반도 평화는 세계 평화
“무력으로 침묵을 강요한 상태에서 유지되는 평화는 결코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의 바탕은 무엇보다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김희중 대주교의 말을 듣는 순간 ‘코웃음’ 칠 법한 사람들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그런 이들에게는 ‘압도적인 힘’만이 평화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크고 작은 분쟁을 체험해본 이들,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일수록 ‘힘’에 무게가 쏠리기 일쑤다.
힘을 가져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군비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경쟁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이기에 ‘힘’은 절대적 신념, 종교적 가르침마저 뛰어넘는 절대가치가 되고 만다. 종교라는 옷을 입은 전쟁광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마저 배반하는 이유다.
이런 의미에서 김 대주교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기원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임을 상기할 때…, 이는 무서운 말입니다.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라는 것은 결국 로마가 주변 국가들을 무력으로 제압해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는 제국주의적 평화였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존속했던 제국인 로마가 140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동화정책’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용의 정신이 사라지면서 로마제국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세계 경찰국가를 지향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이면에 자리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가 낳고 있는 불의한 현실을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조차 전쟁을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미국 정부의 행태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실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동안 ‘무력을 통한 평화’를 추구해온 면이 적지 않다”는 김 대주교의 지적은 뼈아픈 자기고백으로 들렸다.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어렵사리 북한과 대화의 길에 나선 성직자들을 ‘붉은 사제’로 부르는 등 퇴색된 ‘레드 콤플렉스’를 벗지 못하는 교회 안팎의 현실이 누구보다 안타깝게 비쳐지는 모습이다.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않고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드 콤플렉스’를 벗지 못하는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아픔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도 형제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지닌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레드 콤플렉스’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현실을 우려했다.
“매스컴에서도 일방적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집단까지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 대주교는 한반도를 둘러싼 이러한 현실이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 평화는 동북아, 동북아 평화는 세계 평화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 출발점인 남북 관계가 지금처럼 갈등과 분열 속에 있으면 세계 평화도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 무력 아닌 사랑을 통한 평화
이 때문에 김 대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통한 평화’를 이뤄나가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앞에, 우리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음을 끊임없이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은 우리와 동등한 입장에서 사랑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우리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평등’과 ‘나눔’에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32-34)
“누군가와 동등한 위치에서 나눔을 실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초대 교회의 신자 공동체가 모두 함께 누린 큰 은총의 신비는 바로 ‘평등’과 ‘나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 대주교는 로마 황제 가문의 노예 출신으로 제16대 교황에 오른 갈리스토 1세 교황(재위 217~222)을 신앙의 모범으로 꼽았다.
“갈리스토 교황은 비록 노예 출신이었지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신분을 떠나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당대 노예가 귀족을 가르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평등으로 평화를 일궈낸 것입니다.”
당대에 갈리스토 교황은 너무 관대하다고 비난을 받았다. 그가 살인과 간음에 대해 공적 참회를 한 이에게는 영성체를 허용하고 자유로운 여인과 노예 사이의 혼인을 인정하는가 하면, 박해 중에 일시적으로 배교한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상의 차이가 엄격했던 한국교회 초기 신앙의 선조들은 신분을 뛰어넘어 주님께서 심어주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삶 속에서 실천했던 것이다. 복자 황일광(시몬・1757~1802)이 대표적이다. 당시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백정이었던 황일광을 맞은 초기 교회 신앙공동체에서는 백정이라는 그의 신분이 아무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황일광의 신앙고백은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가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서로 다른 색깔이 어울려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다양한 음색이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이룹니다. 우리의 대화 문화가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한이 서로 다른 의견을 조화시켜 공통분모를 만들어나가면 관계개선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요.”
각자의 위치와 상관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베풀고 나누는 게 사랑이고, 평화의 토대라는 그의 말에 큰 울림이 담겨 있었다.
2015년 10월 ‘광복·분단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중 염수정 추기경과 김희중 대주교, 이기헌 주교(왼쪽부터)가 통일의 소망을 적은 한반도 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7년 7월 정전협정 64주년 ‘평화협정 촉구 종교인 평화기도회’에서 김희중 대주교(맨 왼쪽) 등이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평화’로 개사해서 부르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사랑으로 진정한 평화 이루려면
교회가 ‘평화’의 가치를 강조하고 평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지만 평화를 절실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 신자들이 많은 현실 또한 여전하다. 김 대주교는 이 원인을 ‘공동체성의 약화’에서 찾았다.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과 피해에 대해 둔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고통을 받고 있을까’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는 사랑을 바탕으로 평화를 이뤄나갈 구체적인 길도 제시했다. 개별 신자 차원을 비롯해 본당, 교구는 물론, 한반도를 뛰어넘어 전 세계 차원에서 그린 청사진이었다.
“우선 신자들과 본당 내에서부터 남북 간 화해와 평화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평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터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관련 교육 자료를 만들고 각 본당에서 주기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2016년부터 본당 내에 ‘민족화해분과’ 설치를 추진해 2017년 말 현재 7개 교구 140여 개 본당에서 평화운동의 새로운 교두보를 마련한 것을 좋은 사례로 꼽았다.
김 대주교는 2015년 12월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소속 주교들과 북한을 방문해 사제 파견에 대한 협의를 끌어낸 것을 특히 의미 있는 성과로 들었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가 공고해지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미국·이탈리아·독일·프랑스 주교회의 등과 교류하며 평화를 향한 한국교회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려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평화의 외연을 넓히고 실질적 내용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 증오의 되물림을 넘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김 대주교는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다. 그는 2년 전부터 여러 기회를 통해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해오고 있다. ‘평화협정’이 남북 대결 구도를 협력 구도로 바꿀 수 있다는 이유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과도한 군비 경쟁으로 낭비되던 자원을 세계 평화와 전 세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 평화를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김 대주교는 평화협정으로 열리게 될 평화의 길, 그 끝에 가닿을 미래가 다름 아닌 주님의 집임을 들려주고 있다.
글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