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교황의 메시지는
“이주민과 난민, 평화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전쟁과 기아,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평화롭게 살 곳을 찾는 이들
교황 “이주민·난민들 환대하며
평화 건설의 기회로 삼아주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2018년 제5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제는 ‘이민과 난민’이다. 국제 이주민들의 고통과 불안한 삶은 오늘날 세계 평화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교황은 이번 담화에서 이주민과 난민들은 ‘평화를 찾는 이들’이며 우리는 그들이 ‘공동의 집’에서 다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는 해마다 1월 1일을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며, 교황은 메시지를 발표한다. 한국교회는 이 날을 의무 대축일로 지낸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에, 교황이 특별히 이주와 난민 문제를 성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 이주민과 난민, 그들은 누구인가?
교황은 ‘이민과 난민 : 평화를 찾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담화에서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이주민과 난민 문제를 다룬다. 이주민(migrant)과 난민(refugee)은 모두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지내면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같지만, 그 동기와 부여되는 법적 지위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이주민은 보다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다른 지역과 나라로 이주하는 이들을 말한다. 반면 난민은 “박해, 분쟁, 폭력, 또는 기타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 등으로 인한 공포로 출신 국가를 떠난 이들”이다.
‘난민’에 대한 효과적인 구호와 법적 보호를 위해서 ‘이주민’과 ‘난민’ 용어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도 있다. 즉 ‘난민’이 처한 상황의 ‘긴급성’과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에는 이주민과 난민 모두 절박하고 긴급한 이주 동기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황은 담화에서 “2250만 명의 난민을 포함한 2억5000만 명 이상의 전 세계 이주민들에 관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며 그들은 “전쟁과 기아를 피하기 위해 또는 차별과 박해와 빈곤과 자연 훼손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곧 “평화롭게 살 곳을 찾고 있는 남녀노소”다.
교황은 그들을 ‘자비심’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교황은 우리가 단지 마음을 열어 그들을 환대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일깨운다. 교황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다시 한 번 안전한 집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탑을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놓고 계산을 잘못해 완성하지 못한 경솔한 건축가처럼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황은 입으로만, 구호로만, 표정으로만 하는 환대는 소용없다고 강조한다.
■ 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는가?
교황은 담화에서 이민과 난민 현상이 발생하는 주요한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끝없이 이어지는 끔찍한 전쟁과 분쟁, 대량 학살과 인종 청소”의 결과로 생겨난 이재민의 증가다. 지난 20세기는 그야말로 최악의 세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의 국지적 전쟁, 대규모 인종 학살 등이 난무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어떠한 참된 돌파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교황은 지적했다.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는 “무장 투쟁을 비롯해 다른 형태의 조직적 폭력들이 국경 안팎에서 민족 이동을 계속 촉발하고 있다.”
이주민과 난민들이 증가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간절히 바라고 흔히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이주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자연 훼손으로 악화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하는 것도 이주민과 난민 현상을 더욱 부채질한다.
■ 과장된 외침들
물론 많은 이들이 정규적이고 합법적 경로를 통해 이주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안전도 기회도 제공하지 않고 모든 합법적 통로는 비현실적이고 가로막혀 있으며 너무 느린 것으로 보일 때에, 주로 절박한 심정으로 다른 방도를 선택한다.”
이러한 면에서 교황은 오늘날 국제 사회가 난민과 이주민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자세를 제시한다. 무엇보다 교황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거나 새 입국자들을 받아들이는 비용이 크다고 역설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이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인간 품위를 깎아내리는 과장된 외침”에 대해서 엄중하게 경고한다. 교황은 그러한 ‘과장된 외침’의 저의는 ‘정치적 이유들’이라며 그러한 행위는 “평화를 조성하는 대신… 폭력과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교황은 “이주민의 증가를 위협이 아니라 평화 건설의 기회로 삼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관상하는 시선’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2014년 6월 미국 텍사스 브라운스빌에 있는 임시 보호소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난민 어린이들. CNS 자료사진
■ 언제나 문이 열린 도시
교황은 이주민과 난민 문제를 ‘관상하는 시선’, 즉 세상일들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세상이 ‘성문이 언제나 열려 있는 도시’임을 알게 된다. 그 도시는 “‘정의’를 원칙으로, ‘평화’가 왕으로서 다스리는 곳”이다. 그 도시 안에서는 모두가 한 가족이고, 모두가 지상 재화를 함께 누릴 권리를 갖는다. 그런 시선으로 볼 때, 이주민과 난민은 “빈손으로 온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용기와 재능과 에너지와 열망, 그리고 고유문화라는 보화를 가지고 옵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받아들여 준 나라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교황은 이주민과 난민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와 사회에 오히려 평화의 씨앗들을 뿌려주고, 그럼으로써 더 풍요로운 문화와 삶을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 공동 대응을 위한 4가지 지침
교황은 이주민, 난민 문제에 대한 4가지 행동 지침을 제시했다. 이 지침은 이미 2017년 8월 발표된 제104차 세계 이민의 날 교황 담화문에 담긴 것이다. 교황은 이주와 난민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이 환대, 보호, 증진, 그리고 통합의 4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즉, “환대하기”는 “이주민들과 실향민들이 목표한 국가에 합법적으로 들어가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그들을 더 이상 박해와 폭력의 나라로 몰아내지 않는 것”이며, “보호하기”는 “피신처와 안전을 찾아 실질적 위험들에서 달아난 사람들의 침범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착취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증진하기”는 “이민과 난민의 온전한 인간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고, “통합하기”는 “난민과 이민이 지역 공동체의 온전한 인간 발전에 봉사하는 가운데 상호 풍요로움과 유익한 협력 과정의 일부로서, 자신들을 환대하는 사회의 생활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 2가지 유엔 글로벌 콤팩트
나아가 교황은 이러한 4가지 지침들이 2개의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 유엔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제협약)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엔 회원국들은 지난 2016년 9월 총회에서 ‘안전하고 질서 있고 정상적인 이민’과 ‘난민’에 관한 ‘유엔 글로벌 콤팩트’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두 글로벌 콤팩트의 초안은 2018년 2월 중 발표, 9월에 표결에 부쳐져 확정된다. 유엔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합의로 마련할 이 협약은 추후 이민과 난민에 대한 다양한 정책 제안과 실천 수단을 이끄는 지침이 될 것이다.
교황은 이 국제협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두 개의 글로벌 콤팩트는 연민과 선견지명과 용기로써 영감을 받아, 평화 건설 과정에 도움이 되는 온갖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 국제 정치에서 요구되는 현실주의가 냉소주의와 무관심의 세계화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직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주 현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시해왔다. 2018년 평화의 날 담화의 주제로 이주민 문제를 성찰한 교황은 다시 한 번 구호나 동의, 인식 수준에 멈추지 않는 구체적 실천과 행동의 차원으로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