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희년] 평신도와 사도직 (상)
“모두가 하느님 백성” 초대교회 인식 되찾는 노력 중요
성직자-평신도 구분에 앞서 모두 한 형제자매로 인식
교회 공동 주체였던 평신도
로마 국교 선포 후 규모 커져
사회 구조·문화·의례 흡수돼
교회 서열과 권력구도 생겨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거치며
교회의 사명 재인식하고
평신도 신원과 역할 재정립
2018년 ‘평신도 희년’이 밝았다. 평신도 희년은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권길중, 이하 한국평협) 창립 50주년을 맞아 선포됐다. 평신도 희년은 평신도들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고유의 사명을 되새기며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평신도 희년을 맞아 먼저 2회에 걸쳐 평신도의 신원과 평신도 사도직의 의미를 올바로 알아보자. 그 첫 순서로 교회 안에서 시대별로 변화한 평신도의 신원에 대한 의식을 짚어본다.
■ 초대교회의 평신도
초대교회는 ‘하느님 백성 안에 모두가 한 형제자매’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 누구나 스스로를 ‘하느님이 선택한 자’, ‘성령의 궁전’, ‘성도들’, ‘제자’,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사랑과 일치의 생활을 했다. 교회는 다시 오실 주님을 증거하며 세상 안에서 세상과는 구별되는 공동체를 이뤘다. 초대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분리하고 구분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백성이 이교 백성들 중에서 선택받고 분리, 성화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 안에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인식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교회는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반, 그리스·로마의 정치와 사회, 문화 안에서 이단의 박해로부터 정통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교회 구조를 발전시키면서 당시의 서열화된 사회구조를 모방하게 됐다. 사회구조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교회 내에 계급이란 용어가 정착했고, 서품으로 계급이 형성됐다. 이로써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도 분명해졌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의 성직자와 평신도 계급 구분은 직무를 강조한 것이었을 뿐 평신도를 경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이원적으로 엄격하게 분리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평신도들은 성직자들과 함께 교회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교회의 주체였다.
■ 중세교회의 평신도
로마제국이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후 가톨릭교회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교회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교회는 소집단에서 탈피해 대규모 종교집단으로 변모했고, 정치·지리적으로 로마제국과 함께 했다. 제국의 사회구조와 화려한 문화·의례가 교회 안에 흡수됐다. 교황은 황제의 서열에 이르게 됐고, 주교들도 국가 공무직의 높은 서열에 올라 특전을 누렸다. 왕권과 신권은 공생관계가 됐으며,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서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세속의 정치에까지 관여하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됐다.
국가의 모든 정책결정은 성직자들과 세속의 권력자들이 독점하게 됐고, 일반 국민과 신자들은 대중으로 전락했다. 초대교회의 ‘교회와 세상’이라는 구도가 교회 내부의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도로 변환된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는 성직자들이 일반 신자들과 다른 고유한 형태의 생활을 함으로써 드러나게 됐다. 5세기 초부터 사제들은 고유한 복장을 착용하기 시작했으며, 5세기 말부터는 수도자들처럼 삭발을 했다. 6세기에는 성직자들의 독신제가 시작됐다. 일반인들이 라틴어를 점점 쓰지 않게 되면서 8세기부터는 성직자들만이 라틴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신자들이 라틴어로 거행되는 전례를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참례하게 됐으며, 평신도는 ‘비전문가’, ‘교육받지 못한 사람’,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됐다.
2017년 11월 19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평신도 희년 선포식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 것을 다짐하는 평신도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근대교회의 평신도
16세기 종교 개혁가들은 성직주의 타파와 평신도의 위상 및 역할의 변화를 주장했다. 종교개혁에 대항해 교회는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를 열어 교회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 또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1870)를 통해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교의로 선포했다. 이로써 교회는 가르치고 성화하고 통치하는 성직자와 이에 순명하는 평신도로 구분됐다. 피라미드형의 성직자 중심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하지만 종교개혁과 18세기 계몽주의, 프랑스혁명 이후 불거진 세속화로 인간의 영역은 교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됐고 인간과 세상은 자율성을 강조하게 됐다. 이에 따라 교회는 19세기부터 성경과 교부라는 교회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이자 친교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 질서와 의식이 태동했다. 교회는 순례자로서 세상에 살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을 인식하게 됐다. 성직자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없기에 교회는 평신도의 역할에 주목하게 됐다. 평신도들은 자신의 신원을 자각하고 활발한 운동을 전개했지만, 여전히 평신도 사도직은 교계 제도의 사도직에 평신도가 참여하는 것으로 성직자의 지도 아래에서만 가능했고 순명이 요구됐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평신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의 쇄신을 바라는 세상의 요청에 응답해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세상과 대화와 협력으로 만나며 연대하려 했다. 공의회는 초대교회의 삶과 성경이라는 ‘원천’으로의 복귀를 추구했다. 공의회는 ‘시대의 증표’를 교회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해석해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실천하려 했다.
그 결과 교회는 하느님 백성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성사라고 밝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이하 교회헌장)에서도 평신도를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31항)이라고 정의했다.
교회는 이 헌장을 통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하느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성경과 교부들의 사상을 복구하고, 평신도의 역할은 ‘일상의 가정생활과 사회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교회 안 평신도의 역할
교회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이들을 교회의 직무에 따라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로 구분한다. 즉 평신도는 교회의 특별한 직무를 맡은 성직자와 봉헌된 삶을 사는 수도자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교회 안에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의 구별이 있지만, 이 구별은 차별이나 상하 위계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신도의 직무는 성직자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성직자의 직무를 나누어 받는 것도 아니다. 평신도 역시 그리스도로부터 사도직 직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바로 주님께 사도직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900항)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직무에 성직자와 평신도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성직자와 평신도가 직무로서 구별되지만, 품위와 활동에서는 평등하다고 가르친다.(교회헌장 32항 참조)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