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회’ 출범
“4·3의 진실 밝혀질 때 화해와 평화의 길 열립니다”
문 주교, 20년 가까이 4·3관련 활동… 진실 규명 위한 노력
“제주도민들 아픔 함께 나누며 이 땅에 사랑과 정의 세우길”
2018년은 제주에서 ‘4·3’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제주 4·3’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3만여 명이 희생됐지만 4·3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묻힌 역사로 남아왔다. 이로 인한 아픔은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 크고 작은 상흔을 남겼다.
1월 1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회’는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이들의 아픔에 함께하려는 교회의 사목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은 제주 4·3이 역사의 아픔을 딛고 평화를 향한 디딤돌이 되길 희망하며 이러한 길에 난 교회의 발자취를 좇으려 한다.
● 제주 4·3사건은
1947년 경찰발포사건으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 진압과정서 3만여 명 학살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펴낸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일선거, 단일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돼 있다.
당시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3만여 명이 학살됐지만 반세기 이상 금기의 영역에 갇혀 있던 어둠의 역사였다. 진상 규명 목소리는 이념논쟁에 가로막혔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은 위로는커녕 색깔론에 숨죽여야 했다.
가톨릭교회는 제주교구를 중심으로 제주 4·3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활동을 펼치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주도민들과 연대해왔다.
정부는 1999년 여·야 합의에 의해 제정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을 2000년 1월 공포했다. 또, 2003년 10월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를 공식 채택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31일 제주지역 호텔에서 4·3유족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
2003년 4월 3일 제주시 봉개동에서 4·3평화공원 기공식 열렸다. 2008년 11월에는 제주4·3평화재단이 출범했다.
2014년에는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 특별위원회 위원장 문창우 주교
제주교구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회’ 위원장 문창우 주교는 “4·3 70주년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관심사는 하늘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으신 사람의 몸을 빌려 이 땅에 내려오신 강생의 신비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제주교구가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2018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문창우 주교(제주교구 부교구장)는 하느님과 인류 역사의 만남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과 함께하시는 자비로운 하느님 모습을 몇 번이고 힘주어 말했다.
“신학의 장소는 하늘 나라가 아닙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현장, 인간의 기쁨과 슬픔, 고통 모두가 하느님 영역입니다.”
주님께서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시는 영역이기에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당연히 주님 뜻을 좇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 주교의 논리다.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신성여중 교장 등으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양성할 때도 그의 눈길이 늘 세상 한가운데 머물렀던 까닭을 알 수 있다. 제주 4·3을 둘러싼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온 이유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제주 4·3에 내재된 한(恨)은 제주도민들만의 현실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길이 머무는 현실이며 하느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역사적 장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쉽게 나서기 힘들어 멈칫거리던 시절, 제주 4·3을 본격적으로 한국교회 역사로 불러낸 이가 문 주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사제품을 받은 문 주교는 제주 중문본당 주임을 맡고 있던 1998년 이미 제주 4·3 문제에 천착하고 있었다. 당시는 제주 4·3 50주년을 맞던 때였다.
“일제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초들이 분단현실과 맞닿아 겪은 첫 시련, 제주 4·3의 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한 길에 종교인이 나섰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선 제주교구 중문본당 문창우 신부는 「4·3의 역사와 신학적 모색」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오늘날 희년 정신을 실천하는 길은 바로 억울하고 불행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근본원인을 찾아내고, 그들을 온전한 삶에로 복귀시키는 일”이라고 역설했다.”(본보 1998년 12월 6일자 15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롯한 개신교 전국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실천불교 전국승가회,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등 각 종파를 망라한 종교인들이 1998년 11월 30일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프랜시스홀에서 마련한 ‘제주 4·3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한 종교인 대회’를 전하는 기사다.
“하느님은 당신 사랑으로 지으신 우리 인간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인간이 관심을 두는 것에는 하느님께서도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당연히 주님 눈길 머무시는 곳을 찾아가야지요.”
이런 까닭에 ‘제주 4·3’을 지역의 문제가 아닌 전국민적 문제로 승화시켜낸 첫 자리에 문 주교가 있었던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4·3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주춧돌을 마련하고자 1999년 8월 30일 문을 연 ‘제주 4·3 고충상담소’ 초대소장을 맡아 활동해 온 문 주교는 지금도 ‘제주4·3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진실을 드러내는 길에서도 사랑과 정의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 있게 함께 가야 한다는 게 문 주교의 지론이다. 제주 4·3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올 한 해 교회 안팎에서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행사도 이러한 원칙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올 7월 전국의 신자 청년·학생들을 대상으로 마련될 예정인 ‘4·3 평화신앙캠프’는 제주 4·3을 새롭게 할 장으로 눈길을 끈다.
“역사의 상처, 억압과 족쇄가 채워진 역사를 끄집어내 진실을 드러낼 때 화해와 평화의 길이 열립니다. 그 시대 민초들의 아픔에 함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제주 4·3 70주년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