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없다” 정부 입장에 피해 할머니·지원 단체 반발
“위안부 문제, 물러나지 말고 적극 해결해야”
“진실·정의 어긋난 합의 무효”
日 공식 사죄·책임 이행 촉구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봉헌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미사’. 제대 앞에 500개의 작은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지원 단체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맺어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지원 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정부를 대표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월 9일 오후 서울 사직로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 정부입장’을 내놓는 자리에서 “명시적인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하지 않는다”면서도 일본 정부에는 “과거사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한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출연한 피해자 지원금 10억 엔(108억 원)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도 1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진실을 인정하고 마음을 다해 사죄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라며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 처리는 시간을 두고 피해자 할머니, 일본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한 정부 공식입장이 나오자마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합의가 잘못됐다고 인정하면서 합의 파기나 재협상을 안 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정부 발표를 TV로 지켜본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2) 할머니 역시 “협상을 다시 해서 잘못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야 하고 일본에서 받은 돈은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본군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도 1월 9일 공동입장문을 내고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 2015년 한일합의는 무효 ▲부당한 합의에 근거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 등을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외교적인 이유로 일본 정부의 자발적인 조치만을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변해야 할 정부는 일본 정부에 범죄사실 인정, 공식사죄와 배상 등 법적 책임 이행을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종화 신부(작은형제회 정의평화창조질서보전위원회 위원장)도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나 재협상은 없다는 정부 발표를 접한 뒤 “우리 정부는 외교적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한 걸음도 물러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은 전 세계적으로 밝혀야 하는 사안이기에 우리 정부는 어떠한 눈치도 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선 신부(전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이번 한·일 위안부 정부 발표는 일본의 반응을 염두에 둔 ‘정치적 언사’로 보이고, 국가 간 합의를 무시할 수 없는 외교적 관례를 고려했겠지만 잘못된 합의는 당장 안 되면 시간을 두고서라도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