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석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은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 전반에 걸쳐 예기치 못한 난기류를 형성해 놓고 말았다. 20세기의 절반을 손에 거머쥐고서도 그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하였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기까지 불과 보름이란 짧은 기간도 참지 못한 채 운명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김일성.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에 불과하였다.
이제 김일성 시대는 가고 김정일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김정일 시대의 운명은 어떠한 것인가. 그의 장래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김일성처럼 화려한 혁명활동 경력과 카리스마를 지니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성품이나 능력이 반 세기에 걸친 절대권력으로 다져진 김일성 왕국을 유지해 나가기에는 벅차다는 것이다. 또한 절대권력 뒤에 따라오기 십상인 권력 해체 내지는 소멸의 원칙이 북한의 경우에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과연 김일성 시대의 운명과 북한 사회의 미래는 예측이 가능한 것인가. 또한 이 와중에서 남북관계와 북한 교회의 앞날은 어디를 향하게 되는 것일까.
일단 김정일의 권력 승계는 북한 사회의 현실로 굳혀져가고 있다. 그 배경을 이루는 김정일 시대의 출범 예고는 이미 2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12일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줄되는데 여기서 그를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하는 결정이 채택된 바 있다. 그보다 10년 전인 1964년에 김정일이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였으므로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지 30년, 후계자로 추대된 지 20년 만에 드디어「김일성 없는 김정일 시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김일성의 절대권력을 물려받은 도제실습 기간이 무려 20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기간을 김정일 개인에게만 국한시켜 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앞으로 김정일 시대를 뒷받침해 나갈 대체 엘리트그룹 전체의 수련 기간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넓은 범위로 보면 수십만에 달하는「3대 혁명 소조」그룹이 이에 해당하고, 좀 더 범위를 좁힌다면 김정일과 함께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을 다녔던 혁명 2세대 핵심 그룹이 이에 속한다.
80년대 이후 이 후계 그룹은 김일성을 비롯한 혁명 1세대에게 북한 사회를 이끌어갈 역량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하였다. 평양 거리를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일종의 전시장으로 꾸미고, 합영법을 제정하여 국제 사회에의 진출을 시도하는 등 점진적인 개방과 개혁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의욕을 보였다.
남북관계에도 과감한 충격 요법을 구사하여 다각적인 대화 채널을 시험해보면서 85년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상호교환을 비롯, 문화체육 교류 등을 선보여 축구와 탁구 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는 변화도 연출하였다. 88년 10월경에 평양 장충성당과 봉수교회가 건립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후계그룹 즉 김정일 세대가 집권세력이 아니라 집권 능력을 검증 받기 위한 실험적 집단에 불과하였다는 데 있다. 이들의 진보적 움직임은 때때로 혁명 1세대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켜 실험의 결과를 바로 눈 앞에 두고 물거품이 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군부 개혁을 시도하였던 오극렬, 경제 개방과 체제 개혁을 염두에 두었던 연형묵, 남북 경제 교류에 힘입어 경제난의 타개를 도모코자 하였던 김달현과 김정우 등은 결정적인 시기에 퇴장 당하기도 하였다.
김정일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은 이 후계그룹이 명실상부한 집권세력으로 가시화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 자신에 의해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었던 것은 남북관계 변화 가능성에 대한 최종적인 검증이 혁명 1세대에 의해 이루어지고 매듭 지어져야 한다는 정서를 대변한 것이었으므로, 그 완결을 보지 못한 북한 권력 구조는 당분간 내부적으로 갈등을 빚을 소지가 크다.
만약 김정일이 정치적 지도력을 서둘러 과시하기 위해 급격한 변화를 추구한다면 보수 강경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권력 투쟁을 초래할 위험이 크고, 이를 너무 의식하여 내부적인 안정에만 역점을 둔다면 현안인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남북관계 변화에 탄력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어 또 다시 고립과 긴장의 미로를 헤맬 수밖에 없다.
김일성의 죽음과 김정일의 등장을 놓고 우리 사회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극단적인 반응이 엇갈리는 착잡한 상황이다. 거의 모든 판단이 구름처럼 떠다니는 몇 조각의 정보에 의존하고, 결국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투사해 놓은「시장의 우상」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가 더욱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 태풍의 회오리 속에 숨 죽여 흐느끼고 있는 북한 교회. 어쩌면 살아있는 신이었던 김일성의 퇴장으로 살아있는 하느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반 세기에 걸쳐 우리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분단의 갈바리아 산상을 오르고 있는 북한 동포들과 북한 교회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아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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