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장애인사목 전담신부인 저에게 사람들이 가끔 묻습니다.
“신부님은 장애인들하고 뭐하세요?” 혹은 “무슨 일을 하세요?”
순간 당황스럽지만 그러면 저는 “뭘 하긴요, 그냥 같이 있어요. 그냥 그들 곁에 함께 있는 거지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몇몇 신부님들은 “그거지요. 그게 최고지요”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봅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도 내가 있고 여러모로 너무나 부족하고 잘 못하는 것이 많은 것을 알기에 말하기도 조심스럽지만, ‘함께’라는 것은 공간적인 의미로만은 많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닐 때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여기서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은 나의 이러한 느낌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많은 경우에 역으로 나에게서 얼마든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이 되시나요!
그러면 나는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과 내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과 느낌이 들까요?
먼저 끊임없이 의지적으로 단절되지 않는 만남을 위해 노력할 때, 맞고 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르지만 서로의 생각에 관심을 가져주고, 내가 존중되고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즉 미성숙과 부주의로 성의 없이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
물론 나도 사람인 이상 사정이 있을 때나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고 기호나 취향으로도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고 좋을 수는 없으니, 가끔은 나의 이러한 상태를 솔직하게 얘기 나누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무겁고 엉뚱하지 않게 서로 간의 이해와 헤아림을 위해. 여기에는 나와 너의 경계를 함부로 넘나들지 않고 직책, 권한, 지식, 나이, 재산 등 그 어떤 것도 남용되지 않는 가운데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세상의 일 중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하나 됨과 일치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내가 나와 더불어 함께 하며 이루어가는 삶의 모습을 보면, 또 그 안에 함께 어우러져 있는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참 얼마나 풍요롭고 오묘하며 아름답고 감사한지. 아직도 내 마음대로 내가 중심이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바보 같고(?) 안타깝지만 그 중심의 역할을 하느라, 그것을 지키느라 얼마나 힘든가요? 나와 같은 모습의 세상의 중심은 그 사람들의 숫자만큼 있는 것 아닐까? 이런 관점으로 보면 나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중심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기 시작하면 내 삶의 분위기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부터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만만치는 않지만 함께 한다면 많은 것들이 좋게 보이고 평화롭고 행복하겠지만, 아니라면 똑같이 나날이 영육 간에 약해지고 슬프고 괴롭고 힘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 내가 사는 내 인생이지만 삶이란 모든 것이 관계이고 또한 당연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나에게 운명처럼, 어마어마한 나를 살릴 수도 있고 죽게 할 수도 있는 구원의 계명으로 다가옵니다.
신앙인은 사랑을 구원이요 십자가요 운명으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결국 함께한다는 것은 사랑을 이루며 산다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나의 모든 노력에 예수님, 성모 마리아님, 요셉님이 항상 함께 하시며, 필요한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박태웅 신부 (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