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열린 교회, 공동체가 대안이다’ 2.‘산 위의 마을’을 가다
함께 먹고 일하고 기도하고… 지상에서 천국을 그리다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삶 지향
‘한솥밥과 한 지갑’… 공동 소유
본당서부터 복음적 삶 나눠야
충북 단양, 소백산 용산봉 남동쪽 비탈에 자리한 ‘산 위의 마을’. 예수의 제자들로서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미완의 공동체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오직 하느님만이 이루실 일. 나머지 몫은 예수에게 의탁하며 그들은 초대교회의 이상을 꿈꾼다. 유난히 춥던 1월 24일과 25일, 눈밭을 헤쳐 ‘산 위의 마을’로 올라갔다.
충북 단양 ‘산 위의 마을’ 사람들이 1월 24일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녁기도를 바치고 있다. 이곳은 ‘예수살이’의 이상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대안 공동체 마을이다.
■ 산 위로 가는 길
해발 500m에 불과했지만, ‘산 위의 마을’로 가는 길은 험했다. 산길은 좁고 한켠은 낭떠러지였다. 중앙선을 따라 차를 몰았지만 그마저도 없어진 후에는 산 밑으로 붙어서 가야했다. 게다가 쌓인 눈….
‘산 위로 가는 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길이 넓었다면 혹은 눈이 안 내렸다면 조금은 수월했을 것을. 세상의 논리에 매이고 탐욕에 눈이 가리고 미끄러운 빙판 같은 아집에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 일쑤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 기대하는,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분의 사랑을 봅니다.”
“내 마음의 밭이 척박함을 느낍니다. 여전히 저는 인간의 논리로 판단하고 포기합니다.”
저녁기도 시간, 묵상과 생활나눔이 어우러졌다. 단순한 일상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과 공동체, 세상을 참 많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것 같았다. ‘산 위의 마을’ 하루는 나눔으로 끝난다.
■ 소박하고 단순한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미사 후 식사를 하고 오전 노동을 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다시 오후 노동을 한다. 저녁기도와 묵상 후 밤 10시에 소등하고 일과를 마친다.
각자 능력에 따라 노동을 한다. 농지 5만9504㎡(1만8000평)에 먹거리 자급과 농산물 판매가 일상이기에 농사일이 만만치 않다. 겨울철엔 조금 낫지만 산골 생활이 워낙 손 가는 일이 많아 종일 바쁘다.
이날 노동은 청국장 포장, 닭장 수선, 장작패기, 그리고 청소며 세간살이 단속 등으로 나뉘었다. 마을 설립자인 박기호 신부(서울대교구)와 설립 초기부터 함께해온 이동율(바오로·61)씨가 장작을 팼다.
해마다 마을에서 일주일씩 머물다 간다는 와타나베 히로시게 신부(도미니코 수도회)는 능숙한 솜씨로 허술해진 닭장을 수선했다. 그는 “결국 공동체가 인류의 대안”이라며 “교회부터 참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소 7마리와 염소 20여 마리가 밥을 먹는다. 그 앞에 박 신부의 숙소가 있다. 들고 나며 가축들을 들여다보려는 애틋한 마음에서 잡은 자리다.
■ 2% 부족한 삶, 복음과 일치
쪼갠 장작더미를 옮기는 것은 김정훈(진길 아우구스티노·39)씨의 일이다. 기도시간이면 기타 반주도 하는 김씨는 2012년에 아내 유광현(테오도라·39)씨, 두 남매 다예(로사·11), 대철(대철 베드로·5)과 함께 입촌했다. 둘째는 ‘산 위’에서 낳았다. 입촌을 하는데 큰 결심은 필요 없었다. 김씨는 유씨와 결혼할 때 세례를 받았다. 유씨는 복음적 삶을 살려는 공동체운동인 ‘예수살이 공동체’(대표 이정훈 신부)를 통해 이미 ‘예수살이’를 평생의 지향으로 삼았고 김씨는 아내의 뜻에 공감했다.
“살면서 항상 2%가 부족했어요. 왜, 무엇을 위해 사는가 늘 고민했지요. 아이들도 경쟁으로 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태적 삶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요.”
무언가 놓치고 무언가 원하는 일이 계속 되던 중 아이가 유산됐다. 건강한 생태적 삶이 필요했다. 몸을 쓰는 힘든 노동이나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기에 길게 의논할 필요도 없이 ‘산 위의 마을’로 들어왔다.
입촌한 지 8년째인 김정하(베네딕토·55)씨는 “복음이 항상 삶과 유리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자기 포기의 과정은 진행 중”이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는 결국 내 고집을, 나 자신을 못 버리는데서 생긴다”고 말했다.
■ 공동체 삶, 학교가 필요해
다예와 대철이는 공동체의 귀염둥이들이다. 그런데 다예가 다니고 있고 대철이가 앞으로 다닐 보발분교는 폐교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학생 수가 불과 5명. 폐교 위기의 보발분교는 마을의 노력으로 간신히 회생 기회를 얻긴 했지만 숙제가 많다.
마을은 산촌유학에 공을 들인다. ‘산 위의 마을 산촌유학센터’(※문의 010-4184-8633)를 활성화해 작지만 ‘위대한’ 학교를 만들 생각이다. 기초교육은 보발분교에서, 방과 후 교육과 숙식은 ‘산 위의 마을’에서 이뤄진다. 센터는 6개월~1년 기간의 농촌유학생을 상시로 모집한다.
1년간의 산촌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정지성(윤일 요한·13)군은 “자연 속에서 동물들이랑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류경주(실비아)씨는 “이미 몇 년 전에 형인 지창이가 산촌유학을 했었다”면서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할 귀한 체험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예수살이 공동체’를 꿈꾸며
‘산 위의 마을’은 ‘예수살이 공동체’의 지향을 실현하는 도장(道場)과 같다. ‘예수살이 공동체’는 1998년 박 신부 등 몇 명의 뜻있는 사제들로부터 시작됐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예수를 본받아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이 그 정신이다.
‘산 위의 마을’은 ‘예수살이’의 이상을 살려는 이들의 대안 공동체 마을로서 2004년 3월 건립됐다.
공동체 삶의 큰 특징은 ‘한솥밥’과 ‘한 지갑’, 즉 공동생활과 소유의 공유다.
박 신부는 “‘대가족 제도’가 현대 세계의 많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공동체적 삶은 형제적 사랑으로 이루는 대가족 제도”라고 말했다. 공동 소유는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행전 4,34)는 초대교회의 기적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 이상은 현실이다
이들의 이상은 예수의 삶, 제자 공동체,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삶이다. 이상을 현실로 살아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그저 소수의 특별한 이들의 특별한 삶은 아닐까?
‘예수살이 공동체’ 사무국장 김미애(오틸리아)씨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당연한 일을 특별한 일이라고 외면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면 초대교회의 이상은 당연한 삶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살이’는 당연하다. 완성은 하느님의 일이되, 이상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신앙인들의 몫이다.
박 신부는 “본당 공동체가 복음적 삶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기쁨,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본당 공동체를 통해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 위의 마을’에서의 공동체적 삶의 경험이 복음적 삶을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 ‘한솥밥과 한 지갑’을 지향하는 산 위의 마을 공동체.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장작을 패고, 닭을 키우고, 청국장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등 공동생활 안에서 복음적 삶을 실천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