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들의 비행문제는 문제가정에서 그 원인을 찾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비행문제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부모 중 한쪽의 잘못으로 붕괴 직전에 처한 문제가정은 가난과 궁핍을 동반하게 되고 자녀들은 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려워 성적이 떨어지고 소외됨으로서 문제 청소년이 된다는 설명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가정의 문제가 학교로 비약되고 가정과 학교의 문제가 불량 친구를 사귀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집안의 자녀들에게서 불량 청소년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많은 교육 관계자와 청소년문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인을 대체로 입시지옥이라는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주저하지 않는다.
가정문제가 학교로 비약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문제가 가정으로 비약되는 것이 우리나라 청소년 비행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한 학술조사에서 비행을 가장 많이 하는 집단은 공부는 잘 못하나 집안은 부유하고 부모의 기대가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큰 학생들이며 비행이 적은 집단은 공부는 잘하지만 집안은 가난하고 부모가 기대하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라는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올바르게 성장해야 할 수많은 청소년들이 입시제도의 모순 속에 크게 희생돼왔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진학자 위주로 학교와 수업이 운영되기 때문에 진학 포기자에게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들이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하기란 시간문제이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일가견을 갖고 교육제도를 말할 정도로 교육제도의 혼돈 속에 휘말려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교육 대통령으로 불려지길 원한다며 현재의 교육제도를 과감히 뜯어 고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최근엔 교육개혁위원회가 내놓은 대학 본고사 폐지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처럼 교육제도가 제 자리를 찾기 힘든 것은 해방 이후 50년간 누적되어온 교육의 병폐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과 교육에 대한 의식은 부족한 채 법과 제도만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개인의 성장과 발달을 도와 소질과 적성ㆍ능력을 개발하고 인재를 키워 국가에 필요한 일꾼을 양성하는 두 가지 목적을 갖춰야 할 교육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인재 양성적 측면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현재의 교육 풍토는 자아실현적 기능은 상실되고 인재양성적 기능만이 살아 있기에 학생들과 학부모ㆍ교사 모두 교육 풍토를 입시 위주의 석차 경쟁으로만 몰고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과정에서 학교는 당연히 자아 실현보다는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켰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가 매겨지게 마련이고 학생들은 단순한 성적 순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처럼 학생들은 학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음에 따라 진정한 친구 하나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모든 학급 친구들을 치열한 경쟁 상대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내신성적은 학생들에게 극도의 이기주의와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큰 원인이 되고 있고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고 3에 재학 중인 김민석(안토니오)군은『같은 반 친구들이 친구로서 느껴지기보다는 경쟁을 시키기 위해 모아놓은 하나의 집단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고 말하고『그런 기분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항상 겉돌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가 가져온 큰 병폐로서 대학 본고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본고사는 학교 교육을 학원 교육화시키는 주범이 돼왔으며 학교 교육 자체를 파행으로 몰고갔다.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대학 본고사가 대학 입학을 좌우함으로서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일반 과목의 수업시간을 줄이고 국영수 위주로 과목을 재편성하는가 하면 학생들도 일반 과외와 학원 등록으로 학교 교육을 등한시하는 풍조가 되고 말았다.
올바른 인간으로서 성장하기에 필수불가결한 교과목을 등한시하고 국영수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교육은 자아 실현과 인재 양성의 두 가지 교육 기능 중 자아실현의 기능을 청소년들에게 박탈하는 위험한 행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전직 교사 강인수씨는『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몫이 있기에 자신이 갖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이 돼야 하는 데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단지 국영수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 교육의 들러리나 서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선진국의 어느 나라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본고사를 치르는 대학이 없다는 점에서도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는 마땅이 철폐돼야 하고 모든 과목을 중요시하는 교육으로 정상화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교육 여건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자신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경쟁심리에 얽매이게 함으로서 성인이 되 뒤에도 인간성에 있어서 커다란 결점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서울대 문용린 교수는『이러한 교육제도를 타파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올바른 교육을 받았는지를 점검하는 식의「국가 기준 학력 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입시 위주의 잘못된 교육 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 아무런 불이익 없이 잘 살 수 있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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