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2월 28일
60여 차례의 임원 생활중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한「도움의 은총」강의는 처음이었다. 여기서부터 벌써 수강생들은 변하는 것 같았다. 최홍길 신부님의 2시간여에 걸친 열강 덕분에 나의 미흡한 책임이 많이 덜어졌다.
그 덕분에(?) 시간이 지체돼 오늘도 모든 일정이 끝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모두들 잠이 모자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꾸르실료란 묘하여서 그런 중에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임해주었고 잠이 모자라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얼굴빛과 눈빛은 붉게 불타고 훤하게 느껴지니 신기한 일이었다.
■92년 2월 29일
「성사론」강의가 있었고 분단 성체조배는 성공적이었다. 큰 성당에서 마냐니따 미사 봉헌키로 한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소성당으로 모든 준비를 옮기느라 시간이 다소 지연되었다.
임원 15명이 요소요소에 배치되고 나니 6명만이 남아 마냐니따 노래를 불렀다. 지금까지 한 꾸르실료 사상 최고로 초라하고 미약한 마냐니따였다. 그러나 아침식사 때 신자들은 너무 좋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였다. 1백80개의 촛불을 바닥에 진열한 것이 효과를 나타낸 것 같았다.
여러 사람들이 감격해하는 걸 보면 마냐니따 때 내리는 주님의 은총과 축복은 성대하거나 초라하거나 언제나 똑같은가 보다.
앵커리지 한인본당 미사에 최 신부님께서 강론하러 가시고 진행은 계획대로 되어 모든 강의가 오후 4시 30분에 끝났다.
마지막 부분에서는「데꼴로레스」와 함께 시작한 노래 접속곡으로 임원 수강생이 온통 어우러져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었다. 언제 돌아오셨는지 노래하는 무리 속에는 최 신부님이 손뼉치며 흥겨워하시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저녁식사 후 가진 만찬 아가페에서는 최 신부님께서 직접 일품인 사회 솜씨를 보이셨다. 특별히 애써서 초청한 음악 부장은 아예 내게 악기를 맡기고 자기는 대열에서 손잡고 흥청거리며 이별의 노래에 도취되는 통에 나는 뒷전에서 악사 노릇만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전무후무한 꾸르실료를 최 신부님 덕분에 잘 경험했다. 모두들 아쉬워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78년 부산「국제 기능올림픽」에 참가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콜택시 무전기 설치공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납기를 맞춰 시설해 주려고 일본의「국제전기」와 연락하며 밤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일을 하던 때의 내 모습과, 새로운 꾸르실리스따 탄생을 위해 일 주일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교해보았다.
시회적인 부와 명예를 위해 철야작업을 진두지휘하던 내가 이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토록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92년 3월 3일
서양인들의 꾸리아에서 사둔 아파트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오랫동안 사용치 않아 엉망이었다. 춥기도 했고 지저분하기도 했지만「성모님의 나그네」가 아무 데서나 자야지 하고 생각하니 훨씬 견디기 쉬웠다.
강 헤레나 단장의「은총의 모후」쁘레시디움 주회에 참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모두 힘내도록 격려했다.
■92년 3월 5일
잡다한 병으로 모두들 고통 받는다기에「국선도 수련」을 소개했더니 모두들 가르쳐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오후에는 단원들이 그냥 두지 않고 활동하러 가자기에 따라나섰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을 못쓰고 침대 신세를 지고 있는 권태련씨를 방문했다. 2년간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으니 뒷바라지 하던 미국인 남편도 지쳐 이제는 병원에서 나와도 받아주지 않겠단다. 여태 집에서 치료하다 어제 갑자기 위독해져서 응급실로 입원했는데 당장 죽지 않을 것이라고 이달 말에 퇴원하라고 하는데 남편은 더 이상 귀찮아서 안 받아 준다고 하니 갈 곳이 없어 걱정이었다. 수륙만리 고국 산천을 떠나와 자식도 하나 없이 고생했는데 17년이나 함께 살았다는 남편이란 사람이『나 몰라라』할 수 있단 말인가? 2시간여에 걸쳐 이야기도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었다.
늘상 누워만 있으니 등창이 생길까 봐 집에 있을 때는 흑인 여성을 고용, 이쪽저쪽으로 번갈아 돌아눕곤 했는데 병원에서는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때로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한다. 또 성모 마리아를 만난 꿈 이야기도 실감 나게 했다. 그래서 영세하라고 권유하니 쾌히 승락했다.
이틀 후 8명의 단원과 그녀의 집으로 가서 가슴 위에 십자가를 얹고 양손에 촛불과 장미를 잡게 하고 성가「주여 임하소서」를 불렀다. 단원들은 목 메어 부르는 나의 성가 소리에 모두 눈물을 흘렸고 그녀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세례명을「마리아 막달레나」로 정하고 이 성녀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부터 다시 회개하고 참 삶의 길로 들어서는 세례식의 뜻과 믿을교리 4가지를 질문하니 잘 대답한다.
주모경도 잘 외웠다. 2년간 우리 단원들이 꾸준히 돌보면서 기도문들을 벽에 붙여놓고 외우게 했단다. 치유기도를 정성껏 함께 바쳤다. 대세예식 치고는 아주 경건하고 성대하게 치룬 셈이다. 그녀는 무척 행복해하고 얼굴도 상기되어 홍조를 띄었다.
■문태준 단장 연락처
Paul T.Moon 7250 yongc sl. #606 Thornhill Ontario L4j7X1 CANADA
TEL(905)881-8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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