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한 장과 묵주 하나로 떠나는 주말 나들이. 생각만 해도 구미가 당긴다. 우선 무거운 짐에서 해방될 것이고 또 훌륭한 가이드를 끼고 떠나는 여행은 웬지 여유롭다. 이 여행이 또 우리의 신앙생활에 유익이 되고 신앙 자세를 점검해 볼 기회가 된다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또 자녀들에게 한국의 성지를 유창하게 소개하는 멋진 아버지가 될 기회를 잡자. 이 오붓한 가족 나들이를 위해「가족과 함께 떠나는 주말 성지순례」를 기획했다.
김대건 신부의 유체 이장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으나 일반적인 것은 미리내 북쪽 거문정이에 살았던 이민식의 기록이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체는 40일 간이나 모래밭에 가매장된 채로 군졸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당시 17살의 이민식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김대건 신부의 유체를 거둬 현재의 흑석동을 지나 동작리 뒷산을 타고 남태령을 넘어 청계산 골짜기, 하우고개를 돌아 묘론이 고개, 판교를 거쳐 태재에 이르렀고 용인 땅에 들어섰다.
큰 길을 버리고 산과 어둠을 이용해 움직인 그는 태화산 기슭의 통점, 드렝이 고개를 거쳐 은이마을에 도착했고 은이마을에서 미리내까지 험한 고개들을 넘어 마침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미리내에 있는 그의 선산에 모시게 됐다.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오직 신앙과 용기만으로 자신을 지탱하며 핍박의 손길을 벗어나고자 떠났던 순례의 길을 되짚어봄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신앙 선조들의 뜨겁고 생생한 믿음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새남터에서부터 미리내 성지에 이르는 옛 김대건 신부의 유체 이장 경로는 이제 거의 넓은 도로로 변해버렸다. 다만 용인군 모현면 초부리에서부터 옛 길을 따라 걸어서 미리내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전 구간을 자동차로 순례하거나 여건에 따라 초부리에서부터 미리내까지의 구간을 몇 개로 나눠 도보로 순례할 수 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김대건 신부의 유체가 이장된 경로를 직접 밟아보는 도보 순례를 통해 선조의 숨결과 자취에 흠씬 젖어보는 것이 보다 권장할 만하다.
▲제1 출발점 초부리
순례하는 사람의 여건에 따라 몇 군데 기점을 선택할 수 있다. 초부리 기점과 함께 대대리 한터, 남곡리 은이마을, 그리고 묵리 장촌 등에서 미리내에 이르는 구간 등 모두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각 기점은 용인에서 각각 초부리행, 구정리행, 남곡리행, 장촌리행 버스를 이용해서 갈 수 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김대건 신부를 비롯, 주교 2명, 신부 9명, 지도자급 신자 10명이 순교한 새남터를 출발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청계산 남쪽 기슭, 인덕원에서 판교로 넘어가는 길가에 자리한 하우현 성당. 이곳은 1900년에 본당으로 설정된 유서 깊은 곳으로 수림이 울창해 일찍부터 박해를 피해 모여든 신자들로 교우촌을 이루었다.
▲제2 기점 한터 "유의"
서 루도비꼬 신부 유적지를 지나 태재, 능원리, 왕산리를 거쳐 도착하게 되는 초부리는 자동차 순례와 도보 순례 코스가 갈리는 기점. 초부리에서 도보 순례 제2 기점인 한터까지는 잡목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없어 길이 익은 사람의 안내를 받거나 지도를 보며 유의해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앞서 간 순례객들이 곳곳에 꼬리표를 달아놓아 유의해서 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그다지 크지 않다. 더구나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숲 속 깊은 곳에 피어있는 갖가지 꽃들이 순례객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제3 기점 은이마을
3시간 반 정도 부지런히 걸으면 한터국민학교가 있는 대대리 상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가 제2 기점. 제3 기점인 은이마을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거리인데 넓게 깎인 치루개 고개와 드렝이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별로 험한 산세는 아니지만 인적이 워낙 뜸해 조금은 외로움을 느낄 듯도 하다.
제3 기점인 은이마을에 위치한 은이공소 터는 용인지역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지냈고 공소가 시작된 곳으로 김대건 신부가 모방 나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신부가 된 후 이곳을 중심으로 6개월간 활동했다.
현재 공장 한구석 텃밭으로 버려져 있으나 한국 천주교회사의 귀중한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곳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장소이다.
▲제4 기점 묵리 장촌
은이마을을 지나면 이제 순례는 거의 막바지에 이른다. 제4 기점인 묵리 장촌까지는 두 시간 남짓 걸리고 여기서 미리내까지는 40분이면 도착한다. 이 구간에는 일명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고개로 불리우는 어은이 고개, 해실이 고개, 오두재 고개가 놓여있어 성지로 가는 마지막 길을 힘겹게 만든다.
하지만 어은이 고개와 해곡리 중간에 있는 와우정사에는 높이 34m, 길이 12m로 인도네시아산 통 향나무를 깎아 만든 와불이 볼 만하고 주변 경관도 빼어나 힘든 길을 쉬어갈 수 있다.
특히 미리내를 바로 눈 앞에 둔 오두재 고개는 산이 험해 산짐승들이 종종 나타났다고 한다. 이 고개는 김대건 신부가 사목활동을 하느라 넘어 다닌 길이요 죽어서도 넘어야 했던 길이다.
재미 있는 것은 이 세 고개를 신자들은 신, 망, 애덕고개로 불렀는데 은이마을쪽 사람들은 어은이 고개를 신덕고개로, 오두재 고개를 애덕고개로 부른 반면 미리내쪽에 살던 사람들은 반대로 오두재 고개를 신덕고개로, 어은이 고개를 애덕고개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고개를 넘어서면 저 아래 아늑하게 자리한 김대건 신부 기념 경당이 눈에 들어오면서 순례자는 그 옛날 김대건 신부의 뜨거운 신앙의 숨결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면서 순례의 발길을 마무리하게 된다.
◆도보 순례 코스
초부리에서 미리내까지 30여Km의 도보 순례 코스는 성인 남자의 경우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총 8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이 옛 경로는 군데군데 산길을 가야하고 대여섯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근래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잡목이 우거져 길 찾기에 유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틀 간의 일정으로 떠날 경우 하룻밤 숙소는 은이마을이나 양지 근처에 있는 숙박업소를 이용할 수 있다. 야영을 하고자 할 경우에는 은이마을과 어은이 고개(신덕고개) 중간에 위치한 넓은 공터나 묵리 장촌과 오두재 고개(애덕고개) 사이의 지점이 좋으나 전체 이장 경로 자체가 산과 계곡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적당한 위치를 선택해 야영할 수 있다.
초부리 초부교-상부곡(승림포장 갈림길)-삼막골로 넘는 고개-용인공원 묘지로 넘는 고개-퉁점마을 아래 폐축사-한터로 넘어가는 고개-태화산 기도원-음달 안 갈림길-대대리 상리-은이마을 입구-은이마을-어운이고개-해곡리 해곡마을-용해곡-해실이 고개-묵리 장촌-오두재고개-미리내 성지
◆자동차 순례 코스
총 연장 89Km에 이르는 자동차 순례 코스의 경우 대개 하루의 일정이면 충분하다. 새남터에서 출발해 남태령, 인덕원 사거리, 분당과 태재를 거쳐 능원리와 왕산리를 지나 초부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서부터 옛 경로를 벗어나 용인 사거리, 송전리, 노곡리를 통해 미리내에 이른다.
미리내에 익숙한 신자들의 경우에는 용인 사거리에서 42번 국도를 따라 양지쪽으로 진행하다 양지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17번 국도를 타고 양지 리조트 안 2Km 지점에 위치한 골배마실까지 다녀오는 코스도 괜찮을 듯하다.
특히 자동차로 갈 경우 분당을 거쳐 용인 자연농원이나 약간은 거리가 있더라도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한국 민속촌에도 들러본 만하다. 새남터 순교 성지-이수교 로터리-남태령-인덕원 사거리-하우현 성당-하우현 고개-서 루도비꼬 신부 유적지 입구-분당-태재-능원리 삼거리-문형리 갈림길-왕산리-초부리(도보 순례 시작 지점-)-용인 사거리-묵리 갈림길-송전리 삼거리-난실리 삼거리-노곡리 삼거리-미리내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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