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병자의 날’에 만난 사람] 서울 프란체스코치과 윤훈기 원장
“의료행위, 돈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됩니다”
‘의사=부자’라는 통념에 반기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만 제공
치과 운영하면서 빚 지기도
수익 줄어도 과잉진료 없애야
예수 그리스도는 치유자였다. 나병(한센인) 환자를 고쳐주셨고 다리 못 쓰는 이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오늘날 직업으로 보면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세계 병자의 날 담화에서 지적했듯 현대 의료행위에는 ‘상업정신’이 심각하게 침투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집스럽게 그리스도 정신을 따르려는 의사가 그리운 이유다.
벽에는 ‘지도신부님의 고귀한 가르침’이라는 제목의 글귀가 붙어 있고 책꽂이에는 「성채(城砦)」, 「레 미제라블」,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인류의 정신을 형성한 고전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이곳은 수도원도, 도서관도 아니다.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프란체스코치과(원장 윤훈기) 환자 대기실 풍경이다.
윤훈기(안드레아·55) 원장이 말하는 ‘지도신부’는 아일랜드 출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패트릭 스미스(한국명 천만복) 신부다. 윤 원장이 받은 ‘지도신부님의 고귀한 가르침’은 ▲네 분야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해라 ▲네 분야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라 ▲하지만 네 분야에서 제일 가난해라 등으로 요약된다.
프란체스코치과 환자대기실 벽에는 ‘의료인과 법조인이 돈욕심을 내면 국민들에겐 큰 질병, 큰 사고, 큰 범죄가 많아지고 의료인과 법조인이 돈욕심을 버리면 국민들에겐 큰 질병, 큰 사고, 큰 범죄가 줄어든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실제 윤 원장은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금니 씌우기 같은 시술은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만 지우고 치아건강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진료목록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윤 원장은 지도신부의 가르침대로 세금폭탄과 가난을 선물로 받았다. 병원을 운영해 이윤은커녕 빚을 지기도 했다.
윤 원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지난해와 올해 세계 병자의 날 담화 내용을 접하고 “교황님의 현실인식은 정확하다”며 “한국의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병원도 비인간적 신자유주의에 완전히 지배당한 채 병들어 있다”고 일갈했다.
교황은 올해 제26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에서 ‘의료 행위를 돈벌이 사업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마침내 가난한 이들을 내팽개치고 마는 상업정신’을 질타했다. 지난해 세계 병자의 날 담화에서도 “한 병자가 중심에 놓이지 않고 그의 존엄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불행에 기대어 이윤을 얻으려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어떤 관점과 태도들이 생겨나게 된다”고 경고했다.
윤 원장은 “개발독재시대 의사우대정책에 편승해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의료법도 형식 수준으로만 지킨 한국의 의사들이, 의사는 부자여야 한다는 그릇된 통념과 의대가 수재들을 독점하는 현실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 의료계의 문제는 결국 가정경제를 파탄시키는 의료비와 사교육비 문제를 낳아 의학과 치유의 신 아스클레오피스와 히포크라테스가 한국의 의료현실을 보면 까무러칠 것”이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의대 재학시절 읽었던 A. J. 크로닌 작 「성채」 의 주인공인 의사 앤드루 맨슨이 물질적 타락의 길을 걸을 때 남편에게 돈이 아닌 영혼의 가치를 깨우친 배우자 크리스틴에게서 진정한 의료철학을 배웠다”면서 “병든 중세를 구원한 프란치스코 성인과 병든 현대를 치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은 근본에 있어 같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케어’에 대해 “건강보험 1차진료만으로 99.9%의 국민건강을 지키고 과잉진료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자는 것이 핵심으로 병원 수익은 줄어들지만 그럴수록 더 따르는 것이 천주교 신자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료가 오를 것이라는 걱정도 무의미한 과잉진료를 없애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명쾌한 해답을 내놨다.
윤 원장은 마지막으로 “천주교 신자 의사들이 세금은 제일 많이 내면서 덜 먹고 덜 소유하려 한다면 세상은 구원의 밝은 빛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