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이 넘도록 하느님의 도시, 하느님을 공경하는 도시로 자부해온 성도 예루살렘은 지금 하느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다. 인간 구원의 열쇠가 이 믿음 에 달렸는데 인간의 생사를 지도하던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했고 어떤 형태로든 그의 징벌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런 사정을 제자들은 꼭 알아야만 했다. 이 교육을 상징적으로 가르치신 것이 무화과 나무에 대한 저주였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베타니아에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화요일 아침 또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푸르디 푸르던 무화과 나무가 뿌리 채 말라 죽어 있었다. 이 나무가 뿌리 채 말라버린 것은 열매를 맺을 가망이 없는 예루살렘을 상징한다. 바로 어제 예수님의 징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런 상태에 이른 원인은 신앙을 거부한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을「징벌의 기적」이라 하는데 예수께서는 믿음에 대한 배신은 하느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교훈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대목이다. 이 교훈은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제자들은 어제까지 푸르던 무화과 나무가 갑자기 말라 죽은 것을 보고 놀랐고 베드로는 어제 주님의 저주하던 말씀을 생각하며 주님께 여쭈었다:『주님의 말씀대로 저 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베드로가 어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는 표현은 성서에서 하느님의 깊은 뜻에 무관심하였다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뜻을 나타낸다. 베드로가 스승 예수의 재판장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를 때 첫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절히 울었을 때도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마르 14, 72).
구약성서에서는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성약에 따라 자비를 베푸신 것을 회상시킬 때에 이런 표현을 썼다(신명 4, 32~40 : 5, 15 : 6, 20~25 : 7 ,6~11 : 8, 2~6 : 9, 1~7 : 20, 1~8 : 32, 7).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무관심할 때마다 하느님은 하느님을 믿고 충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을 강도 높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하느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사실 신앙의 문제는 초대 사도교회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문제였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확고한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여러 번 강조했고 산을 움직일 만한 믿음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 복음서 저자에게도 신앙의 문제가 복음의 주제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예수께서「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라고 하셨을 때「이 산」은 가까이 보이는 올리브산을 가리켰고「저 바다」는 올리브산에서 바라다보이는 사해를 가리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확실한 신앙의 힘을 강조한 표현이다.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예수의 한 말씀으로 뿌리 채 말라버린 징벌의 기적과 관련하여 신앙을 강조하는 비유의 말씀은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이라도 믿음은 극복할 수 있는 카리스마적 은총을 받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편 저자는 산과 언덕이 하느님 앞에서 양처럼 팔딱팔딱 뛰는 것을 보았고(114, 4~8) 즈가리야는 올리브산이 두 쪽으로 갈리어 하느님께 길을 터 주는 광경을 현성으로 보았다. 신앙이 간청의 기도와 결부되고 이 초청의 기도를 공동체가 드리고 있다는 초대교회의 상황이 예수의 말씀에서 드러난다.『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이다. 그러니 용서를 받다는 것은 가장 큰 선물이다. 그러나 용서를 받으려면 남을 용서해야 한다. 먼저 용서를 받고 남을 용서하든 남을 용서하고 우리가 용서를 받든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를 요구하고 우리의 용서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조건이 된다. 화해하려는 마음가짐이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적인 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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