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가 그 인생길이 험악했습니다. 정치 권력으로부터는 혹독한 박해를 받았고 백성들로부터는 멸시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 에제키엘과 사도 바오로, 그리고 주 예수님의 길이 모두 그랬습니다.
1독서(에제 2, 2~5)에 나오는 에제키엘은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모두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는 비참한 처지에서 활동한 예언잡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끝장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낯 가죽이 두껍게 제 고집을 부렸던 결과는 실로 무서운 유배의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에제키엘의 길은 그만큼 힘들고 고달퍼야 했습니다.
2독서(2 고린 12, 7~10)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짊어져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 뼈 아픈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바오로가 본래 유다교에 충실했을 때는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고 충분한 교육도 받았으며 그리고 특별한 재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는 그 모든 혜택을 저버리게 되었고 오리혀 박해와 위험을 만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어떤 질병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습니다.
도대체 왜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들이 이처럼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합니까.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뽑힌 특별한 선택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선택은 그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향에서 멸시와 박해를 받았으며 같은 동족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특별한 소명을 받은 예언자들은 그 길이 험난한 길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과거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비롯하여 유신정권, 그리고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이 험악한 인생길을 걸어갔는지 모릅니다. 눈만 한 번 감고 입만 한 번 다물고 있으면 세속의 온갖 혜택이 그들에게 주어졌을 텐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길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언자들은 그래서 우리와는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누구는 눈치껏 편하게 살려고 하며 또 누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의와 진리를 외칩니다. 사람은 진정 자기에게 아무리 불리하고 힘들어도 사람답게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살기에도 너무 짧습니다.
요즘에도 공해추방운동이니 또는 우리밀심기운동이니 하면서 남들은 잘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문제를 외롭게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걸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들은 선택을 받은 분들이며 시대의 예언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아나 장애자들을 위해 삶을 온전히 투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남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은혜로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집에 며느리가 여럿 있는데 시어머니가 늙어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모두 모시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런 때는 핑계들도 많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던 셋째 며느리가 자청해서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는데 그는 그 후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셋째는 인내와 사랑으로서 시어머니를 모셨습니다.
그러나 옆에서는 웃었습니다.
다른 동서들이 셋세째를 찾아와서 이렇게 모셔라 저렇게 모셔라 하면서 잔소리들을 했습니다.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않으면서도 잘 못모시네 어쩌네 하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셋째는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저 며느리는 하느님이 내신 여자』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신 사람은 고달픈 길에서 참 보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오늘은 특히 교황주일입니다. 교황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굉장히 어려운 십자가요 또 외로운 길입니다. 늘 거룩한 일들만 있는 것 같아도 각종 세속사건에 휘말릴 때도 있으며 이단의 위협과 통치자들의 압력에 대처해야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이 그랬듯이 그분의 대리자인 교황님들의 삶도 고달픕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황님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정말 좋은 교황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분은 베드로의 믿음뿐만 아니라 바오로의 뜨거운 전도 열정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양들이 원하는 곳이면 세상 어느 곳이고 달려가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떤 결정도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실로 우리 시대의 자랑이십니다.
세상은 예언자들에 의해 구원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예언자의 길은 고달픕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세상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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