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에 억대의 돈이 왔다갔다 하는 내기 바둑、한 점에 몇백만 원을 넘어가는 고스톱과 골프 등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충격적인 도박 문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해마다 수만 명씩 검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도박사범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압수한 도박 자금만 해도 매년 몇십억에서 1백억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검찰청에서 펴낸 자료에 따르면 지난 92년 1만5천3건에 5만6천8백29명에 이르는 인원이 도박 사범으로 검거됐다. 또 93년 상반기만 해도 총 3만8천2백77명을 적발、이 중 1천9백32명을 구속하고 3만6천1백45명을 불구속 입건한 바 있는데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도박인 고스톱은 전문 도박단의 경우 한 판에 보통 1천만 원에서 규모가 큰 경우 수십억 원에 달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도박에 빠진 가정주부들의 수가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어 88년1천5백 건이던 주부 도박사건이 90년에는 4천2백36건으로 급증했고 92년에는 7천8백23건에 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둑과 골프를 이용한 사기 도박이 성행、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4월 2일 서울 중부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된 김모씨(45ㆍ서울 송파구 가락동)는 같은 아파트 주민이 낀 사기 도박단에 걸려 한 판에 30만 원에서 2억 원에 이르는 내기 바둑과 골프로 불과 10개월 만에 24억을 갈취당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런 거액 도박 사범보다 오히려 더 문제시되는 것은 전자오락기기를 이용한「전자노름」이 광범위하게 일반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도박단과 규모면에서는 비할 바 아니지만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성인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런 업소들은 특히 회사원들이 가장 즐기는 도박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시내에만 해도 3백여 군데가 넘는 전자노름 업소는 고스톱、포커、빠찡꼬 등 오락기기를 들여놓고 담배、음료수 등을 제공하면서 손님을 유치한 후 승률까지 조작해 부당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 5천 원에서 1만 원만 있으면 간단하게 즐길 수 있어 쉽게 빠져들지만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심지어 근무시간에조차 잠깐씩 들르는 사이 몇백만 원의 돈을 노름으로 날려버리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문제의 심각성은 오락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거의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지 1년이 된 박모씨(28)는 6개월 전 회사 동료들과 어울려 퇴근길에「순전히 재미로」회사 근처 오락실에서 전자포커를 했다. 처음엔 1만 원을 잃고 미련없이 일어섰으나 몇 번 드나드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전자도박에「중독」됐고 한 달 만에 3백만 원을 잃었다. 그 후 다시는 오락실에 안 가기로 결심했으나 아직도 박씨는 하루에 한두 번씩 오락실에 드나든다고 고백함으로써 한 번 빠지게 되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중독성 도박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공통적으로『처음에는「재미」로、친구들과의 가벼운 심심풀이「오락」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고 돈을 잃은 후에는 다시 도박을 통해 잃은 돈을 찾으려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오히려 더 큰 돈을 잃게 되고 집 문서、자동차를 잡히거나 신용카드 등으로 빚을 져 가정 파탄이 일어나고 심한 경우 절도、강도 등 범죄에 나서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등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폐해를 야기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상습성 도박은 한 계층이나 부류의 병적인 증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내린「도박성 심리」에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회사 모임、동창회、계모임、집들이、돌잔치 등 크고 작은 모임이 있을 때 고스톱이나 포커는 빠지지 않는 오락이고 이런 자리에서도 몇십만 원의 판돈은 기본이다. 또 최근 들어 종류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각종 복권이나 경품 행사 역시 일확천금의 인간 심리를 이용、도박성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일 년에 몇 번 있는 일제 단속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이 스며있는「도박병」을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 직접 도박에 빠진 적이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일확천금이나 횡재를 기대하지 않는 건전한 사회 분위기와 가치관이 정립될 때 우리 사회의 도박병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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