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2월 17일
밤 9시경 최보니파시오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카지노「딜러」쁘레시디움에 8명이나 출석했고 청년 쁘레시디움도 시작됐고 또 한 쁘레시디움이 가세하여 지금 3개 쁘레시디움이 주회를 시작하려는데 왜 오지 않느냐고 따지듯 말했다.
「3개 쁘레시디움」이란 소리에 귀가 번쩍 열리며 용수철이 튀듯 전화를 끊고 성당으로 달려갔다. 쁘레시디움 회합을 마친 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앞으로 주회에 빠지는 일 없이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무척 기분이 상쾌하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92년 2월 19일
토론토의 정기렬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앵커리지행 비행기 번호와 시간을 알려주고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정기렬씨는『역시 본당의 꾸르실리스따들은 냉랭하고 빨랑카에 대해서도 별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바탕이 잘못된 것 같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것인가. 오직 주님께 의지할 뿐….
LA 이요셉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해 말라는 전제 아래 박용수 신부님의 의견을 전해주면서『신자들이 신부님의 피정을 원하지 평신도의 강의를 원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당초 이런 점을 예상하고 최홍길 신부님께 혼자 다녀오시기를 권했으나 꼭 같이 가기를 원하셨다. 최 신부님을 초청하신 것인데 내가 끼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최 신부님의 뜻도 완고해 할 수 없이 따르려 했었다.
경우에 따라서 평신도 강의를 원하는 곳도 많음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박 신부님의 뜻이 그러니 알았다며 조금도 오해 없으니 최 신부님이 혼자 가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중에 이런 통화를 하고 나니 무척 우울해졌다. 역시「평신도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LA문제를 얘기 드리니 신부님도 가시지 않겠다고 하시며 언짢아 하셨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임을 잘 알고 고맙게 생각하며 혼자 가시기를 계속 권유드렸다.
■92년 2월 21일
필라델피아 꾸리아 간부들을 만나 3월 17~20일까지의 피정 계획과 홍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 꾸리아 단장 송운낙씨, 선교분과장 김요한씨, 송 사무장과의 만남은 필라델피아란 고지 점령을 위한 첫 서전이어서 의미가 컸다. 모두들 협조적이어서 잘될 것 같았다.
돌아오니 밤 10시 정각. 울뜨레야를 시작했다. 6명이 출석한 울뜨레야 이지만 성체강복까지 총 2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진지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최 신부님께 또 한 번 경의와 감사를 드렸다.
모두들 돌아가고 울뜨레야 참석자 수가 적었던 점을 아쉬워하며 술 한 잔 시작한 것이 최 신부님을 자극시켰다. 여러 가지 사목상의 어려운 점을 말씀하시며 화를 내셨다. 위로와 사과를 드리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꼬박 밤을 지새고 말았다. 나중에는 화가 어느 정도 풀리셨지만 밤새 안 주무신 탓에 초췌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 그만 가슴이 아파왔다. 이토록 열심히 사목하시려는데 모두들 왜 이다지도 이해 못하고 협조 못하는지 안타깝기만 하였다.
여태껏 자신을 위한 것, 자신의 즐거움은 모두 포기하고 오직 본당 신자들의 영성 향상에만 전념해오신 분이었다.『인꼴라마리애 단원 생활 1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고 박수를 받느냐』고 반문해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제 더 정신 차려 매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했다.
■92년 2월 24일
드디어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에 꾸르실료를 심기 위해 장도에 오르는 첫 새벽을 맞았다. 주님의 대리자로서 이번 꾸르실료를 지도하실 최홍길 신부님과 6명의 주님의 용사들은 아침 8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달라스를 경유 시애틀을 거쳐 목적지인 앵커리지에 도착하니 예정 시간보다 15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권오진, 임규삼씨 등 여러분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 길로 곧장 꾸르실료 교육 현장으로 직행했다. 저녁식사 후 앵커리지 남성 제1차 꾸르실료는 임원회의, 미사로 시작되었다.
■92년 2월 26일
분단 성체조배실 완성, 모든 계획 및 점검 완료.
어제밤 11시 미사에 참례했던 신자들은 너무 진지하고 경건한 미사에 탄복하여 오늘밤 미사에도 모두가 참례했다. 이제는 정말 앵커리지에 꾸르실료가 심어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최 신부님께서 미사 중에 한 사람씩 감사기도를 바치게 했다. 모두들 감격해하는 얘기들이었다. 특히 정체칠리아씨는 작년 여름 내가 방문했을 때 1%의 가능성 밖에 없었던 꾸르실료가 1백%의 가능성을 보이며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에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울먹였다.
나 역시 작년 8월 22일 이 제안을 받았을 때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차츰 일은 추진되었고 중간에 애로사항은 몇 번 있었지만 드디어 이렇게 실시하러 왔고 그 두 번째 날 임원미사를 드리고 있음이 큰 감동이었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피곤한 몸을 이끄시고도 미사 집전 때만 되면 최 신부님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으시는지 꼿꼿한 자세와 우렁찬 목소리로 성전 안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고 신자들을 감동시켰다.
이토록 풍부한 경험과 자신감에 넘친 영적 지도자를 모시고 꾸르실료를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나 치밀하시고 박력에 넘치신 지도력과 솔선수범하시는 진지한 모습에 모두들 탄복하였다.
새벽 4시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가슴은 부풀고 기쁘기만 했다. 흐뭇한 밤이었다.
■ 문태준 단장 연락처
Paul T.Moon 7250 yonge st. #606 Thornhill Ontario L4J7X1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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