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이 다시 한 번 국제 정치 무대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 평화적 통일의 길이 어두운 쪽으로 열리고 있는 오늘、3백만 한국 교회와 신자들은 하느님의 정의인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 이동호 아빠스와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이관진 회장과의 특별대담을 통해 분단의 십자가를 평화의 십자가로 바꾸어 나가기 위한 3백만 신자들의 사명을 확인해 본다.
대담자:이동호 아빠스<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장>
이관진 회장:<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이관진 회장=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매일처럼 고조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 상황은 좀 솔직히 말씀드리면 겁이 나기도 합니다. 특히 전쟁을 겪은 세대인 저로서는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예사롭지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 결코 다시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치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랜 시간동안 북방선교를 포함해서 북한선교 준비를 위해 힘써오신 아빠스님께서는 오늘의 한국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계신지요. 과연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상하십니까.
▲이동호 아빠스=전쟁은 반 생명적이며 반 복음적인 것입니다. 더구나 불과 40여년 전에 동족상잔의 비극과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한 우리로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이 재발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절대 안 되지만、이를 막는다고 나서는 국제사회 역시 좀 더 지혜로워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우리 스스로가 해야만 합니다. 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일치시킬 수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역사가 보여주듯 나중에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또 소소한 것이었다고 판정되는 오해와 착각、내지는 정치 지도자들의 오판이 참혹한 전쟁을 불러왔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단호하게 전쟁 행위를 단죄하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대변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관진 회장=아빠스님께서도 메시지에서 강조하셨듯이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는 무서운 범죄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의 상황은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전제되고 있지를 않습니까. 형제의 생명을 빼앗고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말살시키는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과연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없을까요. 우리 신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런지요.
▲이동호 아빠스=전쟁은 인간애를 짓밟는 무분별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그 씨앗을 키워갑니다. 우리 사회가 전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떨기만 한다면、오히려 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선 종말론적인 구원을 증거해야 하는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평화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전쟁에 대한 무분별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전쟁의 위기는 사회 안정의 파괴와 집단적인 불안심리의 자극에서 비롯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극심한 사회 혼란과 윤리적 타락을 나타내는 범죄 행위와 온갖 탈선 행위로 얼룩져 있습니다.「기도의 날」 메시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우리는「니느웨」의 사람들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한 타락한 사회에 내리실 하느님의 분노를 좌시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단식하며 뉘우치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분단의 아픔조차 잊어가는 비인간적인 타락 풍조는 전쟁 이상의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전쟁만 피하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보다 하느님의 정의를 되새김하는 진실한 참회가 오늘의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이관진 회장=북한 핵문제로 한국의 통일문제는 오히려 부정적인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통일은 바라지만 전쟁이라는 이름의 통일은 결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통일은 서두르지는 말되 미룰 수도 없는 우리의 여전한 숙제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아빠스님께서는 우리의 통일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언제쯤 성취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이동호 아빠스=통일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입게 될 구원의 때를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또한 받아들일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만 합니다.
통일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갈라진 형제를 사랑으로 맞아들이는 복음적인 방법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서로 용서하고『내 탓이요』를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며 서로의 상처를 감싸줄 수 있을 때 비로소 통일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전쟁의 위기가 고전되고『네 탓이다』라는 목소리만 높이는 분위기 속에서 과연 통일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우리 스스로가 은총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통일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습니다. 또한 남북한의 경제력이 상당히 접근하는 시기를 기다려야 통일의 과정과 통일 후의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러한 견해가 합리적이고「복음적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관진 회장=여타의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한국의 전쟁 역시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좌시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고 동족상잔의 전쟁도 우리 힘으로 막아내지 못한 뼈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의 국제 정세는 또 다시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방향으로 우리의 운명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합니다.
한국의 주인은 한국인이고 주인인 이상 우리에게는 평화로써 나라를 지켜가야 할 숭고한 임무가 맡겨져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이동호 아빠스=사람이 방법을 만들어가야 하지만、일을 성취시켜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평화 역시 주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열매입니다. 우리도 평화를 성취하려면 분단의 십자가를 주님과 함께 지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에 이르러야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얻어진 평화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책임한 태도로 평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분단의 십자가는 북한쪽이 더 무겁다고 보아야 합니다. 소련과 중국 그리고 동유럽 공산국가들과 함께 살아가며 경제를 지탱하던 북한은 급작스런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살 길을 찾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생존의 수단으로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국제사회로 이끌어내는 지혜로운 수단이 필요합니다.
평화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짐을 져 줄 때 가능합니다. 우리 교우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평화의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확고한 의지와 용기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평화를 위한 지혜와 용기가 아쉬운 오늘,「분단의 십자가」「평화의 십자가」로 바꾸어 주시도록 더욱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관진 회장=한국 천주교회 2백 주년을 기해 시작된 한국 교회의 북한선교를 위한 활동은 그동안 기도、모금、지원 등의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북한선교가 곧 내 일」이라는 정신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신자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적은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제한다 하더라도 북한선교、나아가 통일을 향한 교회의 노력과 역할은 미미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필요한 교회의 정신과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이동호 이빠스=우리 한국 교회에「북한선교가 곧 내일」이라는 인식이 크게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2백 주년을 통해「이 땅에 빛을」증거하고자 하였고、서울 세계성체대회를 통해「한마음한몸」운동을 펼쳤던 우리가 갈라진 형제들을 위해 제대로 빛을 증거하지 못하고 한마음 한 몸으로 일치됨을 실현시켜 나가고 있지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해야만 합니다.
92년도 춘계 주교회의에서「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명칭을「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하고、사목지침서 초안을 만들면서「북한선교」의 내용이 바로 다름 아닌「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실현을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지만 아직도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통일신학은 화해의 신학과 일치의 신학을 뜻할 것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들인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구원을 증거합니다.
정치와 관계된 신자들은 그 안에서、경제나 교육에 관계된 신자들은 또 그 속에서 그리고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에 있는 신자들 역시 군대에서 저마다 제 역할을 다하며 평화를 굳건히 지키고 민족적 화해와 일치의 복음을 증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통일 노력은 신앙 속에서「한마음 한몸」운동을 진솔하게 펼쳐나가는 것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관진 회장=한국의 통일은 한국민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선교 역시 한국 교회 모든 십자들의 사명이자 책임이어야 할 것입니다. 북녁에 고향을 둔 사람들만의 북한선교가 아니라 한국 교회 모든 신자들이 의지와 뜻을 모은 북한선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북한의 핵문제로 어두운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국의 통일、북한선교를 위해 우리 3백만 신자들 은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신자 각자가 통일을 위해 모아야 할 최대공약수는 과연 무엇입니까.
▲이동호 아빠스=북한선교는 바로「나의 일」입니다. 내 본당의 일이고、내 교구의 일입니다. 우리 가정의 일이고、환경운동과 마찬가지로 너와 나 그리고 민족 모두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그러나 북한선교란 마치 통일 이후에나 생각하는 일인 것처럼 알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북녘 형제들과 마음으로 화해하고、그들을 위해 기도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매일미사와 기도 속에서 그들과의 통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주교회의 기구인 북한선교위원회는 통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여러 가지 사업을 합니다. 특히 희생으로 봉헌해주시는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기도운동과 계몽운동 그리고 북한과 중국 조선족 교회를 돕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통일이 된 후에 북한지역에 성당을 지을 때만 돕겠다고 편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회 내 통일운동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는「기도의 날」행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아 그 속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장을 활짝 열어나갈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해 주십시요.「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3백만 신자 모두가 한 걸음을 떼어 놓으면 3백만 걸음이 됩니다. 그 힘으로 북한선교와 통일을 준비하는「통일회관」과 같은 공간도 마련하여 전문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등 구체적으로 이에 대비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북한선교를 위한 갚은 관심과 희생을 부탁드립니다.
▲이관진 회장=끝으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성과로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 합의되기에 이르렀는데 이에 대한 전망을 들려주십시요.
▲이동호 아빠스=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최고의 책임을 지는 통치권자가 서로 만나 대화함으로써 길을 뚫어야 그 후에 실무적인 차원의 해결이 가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는 침체된 남북관계와 갈라진 민족사회에 고속도로를 뚫어놓는 것이나 다름 없으며、분단사와 통일 민족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기도의 날」메시지에서도 강조하였습니다만 이제 우리 신자들은 더 이상 뒷짐 지고 지켜만 볼 것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끝날 때까지 3백만 신자 모두가「특별기도」와 희생을 바쳐주실 것을 엄숙히 당부드립니다.
여기에 한 가지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동안 남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상대를 불신하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도록 만들었던 과거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민족 앞에 사죄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진실과 용기 위에서만이 남북 정상회담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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