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김일성 부자만이 유일신이고 구세주인 북한에서 지난 3월 19일 새벽, 혜산의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가 4월 30일 귀순한 여만철씨 가족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유일신은 단지 하느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이 쌓인 압록강 위의 사선을 넘는 순간, 우리 가족을 돌봐준 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었음을 감지한 이후 여만철씨 가족은 줄곧 신의 존재를 의식했고 당국의 보호를 받는 동안 하느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방 안에 성모상을 모셔 두었고 박도식 신부님의「무엇하는 사람들인가」란 책을 보며 영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 신부님 책이 참 재미있디요』여만철씨 일가족을 보살펴주고 있는 관계자를 통해 신앙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들은 하느님을 좀 더 깊이 느낄수록 북한 사회의 허구성을 더욱 뼈저리게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북한에서는 성서 속의 하느님을 김일성 부자로 바꾸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라며 김 부자의 신격화가 북한을 지탱하는 가장 큰 수단이자 유일한 방법이라고 실토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 부자가 신이 아니란 것을 가르쳐주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통일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경제적 교류나 협력보다는 종교인들의 할 일이 더 많이 남아 있다고 여만철씨 가족은 강조한다.
더욱이 지금은 식량난으로 많은 주민들이 김일성 부자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는 등 민심이 험악해져가고 있는 상태임을 강조 남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여만철씨 일가족이 북한을 탈출하기로 결심한 원인도 사실은 극도로 악화된 식량 사정.
『91년부터 지난해까지 냉해가 겹쳐 지난 8월부터는 함흥지역의 식량 배급이 전면 중단되고 가재도구를 팔아 농촌으로 식량을 구하러 다녀야할 형편이었지요』 함경남도 함흥시 회상구역에서 사회안전부(한국 경찰) 지도원으로 근무하다 제대한 뒤 운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여씨는 제대 당시 소련제 녹음기(라디오 겸용)를 구입, 남한 사회의 소식을 훤히 알고 있었고 더 이상 북한 사회에서 살다간 굶어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식량 확보를 위해 여행증 발급이 비교적 자유로운 틈을 타서 여씨 일가족은 탈출의 결심을 굳히고 착실한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 북한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91년도부터였는데 금주(장녀ㆍ20)가 탈출하다 잡히면 죽게 될 것이 뻔하니 우리도 남들처럼 이곳에서 살자』고 말리는 바람에 탈출 결행이 늦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 뒤 여씨는 장남 금룡(18)이와 둘이서 금주양을 설득하는 동시에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가겠다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3월 14일 금주와 금룡이를 혜산의 외삼촌 집에 식량을 얻기 위해 간다는 명목으로 보내놓고 압록강의 얼음을 살피도록 했다. 건널 수 있으면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삼촌의 결혼식에 참석하라는 전보를 치도록 했고 이를 확인한 금룡이가 전보를 보내자 여씨 일가족은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일대 모험에 나섰다. 3월 19일 새벽, 눈발이 덮인 압록강을 이불 속을 뜯은 흰 천으로 위장한 채 국경을 넘는 순간 여씨의 부인 이옥금(45)씨는 중국 쪽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기절을 했을 정도로 절박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국경을 넘어 중국 쪽으로 깊숙히 들어간 이들은 마침 조선족 트럭 운전사를 만나는 행운을 얻어 심양까지 갈 수 있게 됐음은 물론 심양에서 김씨라는 또 다른 조선족의 도움으로 무사히 한국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만철씨 가족은 조선족 트럭 운전사와 심양의 김씨, 그리고 지금 자신을 보호해주며 신앙에 눈을 뜨도록 도와주고 있는 관계자(서울 둔촌동본당 신자)를 자신들의 은인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여만철씨 가족은 이들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한국에서의 삶이 믿어지지 않는 듯 여신 행복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의 생활이 생생합니다. 김일성 부자 생일날 외에는 먹어보지 못한 쌀밥을 매일 먹고 있는데 북에 두고 온 친구들은 통강냉이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40여일 간의 서울 생활 동안 몸무게가 4kg 늘고 키가 3cm나 커졌다는 금룡(18ㆍ고2)이는 북한에서는 1백41cm인 자신의 키가 중간 정도였는데 내년에 학교에 가게 되면 키 차이가 너무 나게 생겼다며 고민에 빠져 있다.
금룡군은 또 북한의 어린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평균키와 몸무게가 줄고 있는 형편이고 1m50cm가 되면 모두 군에 끌려 간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여만철씨는 현재 관심사가 되고 있는 핵문제에 언급, 북한은 이미 77년도부터 핵개발을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은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핵을 가지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임을 강조했다.
여만철씨는 또한『한총련 대학생들의 데모를 볼 때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며 그들이 북한에 단 3일만 다녀오면 오히려 그 반대가 돼 있을 것』이라며 북한 사회의 실상을 바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여만철씨는 이와 함께 북한에는 현재 오직 김일성 부자만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종교란 있을 수 없고『장충성당이니 하는 것은 모두 북한 정권의 들러리에 불과하며 단지 북한의 종교인들은 외국에서 찾아오는 종교인들을 위해 특별히 교육시켜 놓은 내빈 접대객임을 분명히 알고 그들의 주장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고향의 봄」을 가장 좋아한다는 여만철씨 가족. 온 가족의 목숨까지 바꾸겠다는 결단으로 자유를 찾은 여만철씨 가족은 이제 서울에서의 새 출발을 시작하면서 지난 6월 5일에는 서울 둔촌돈성당에서 처음으로 미사에 참례하기도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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