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44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싯점에서「혼혈 한국인」들은 아직도 이 사회의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외국인이 한국에서 40여 년을 살았더라면 아마도 우리들은 이를 한국인으로 대접했을 것이나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남은 혼혈인들이 진정 우리 민족임에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전후 44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방인으로 내몰고 있다. 인기 가수 윤수일, 김인순씨 등 한국 땅에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예체능 계열에서다. 그러나 이들은 혼혈인 중의 1%도 안 되는 극히 드문 경우다. 대부분 혼혈인들은 이 사회의 냉대와 멸시 속에 살고 있다. 6ㆍ25 44돌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한국인이면서도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혼혈인들을 찾아보았다.
55년생 백인계 혼혈인 김복길(가명)씨는 얼핏 보기에 한국 사람(?)과 똑같다.
그런 김씨가 25세 되는 1980년 처가에 혼혈인인 것을 감추고(?) 한국인 여자와 만나 결혼,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행복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깐이었다.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갖고 태어난 아들. 이로 인해 처가로부터 쫓겨나야 했다. 김씨의 기구한 삶이 비단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땅의 수많은 혼혈인들이 갖고 있는 아픔이자 동시에 우리 사회의 배타적인 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이러한 일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단일민족」, 흰 옷과 밝음을 유난히도 좋아하는「백의민족」등 한국인들이 어려서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들이다. 그러나 한민족의 자랑스러움이 또 다른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비수로 꽂혀 아픔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결혼한 인기 가수 김인순씨는『국민학교 때 수업시간에 단일 민족을 강조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책상 속으로 숨고 싶었다』고 회상하며『곧 태어날 2세 걱정에 눈물을 자주 흘리곤 한다』고 밝혔다.
◆막 노동판 전전
대부분이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태어난 혼혈아! 이들은 과연 어느 나라 민족인가?
이들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한국전쟁의 희생양으로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다 숨진 군인들이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50년 이후 급속도로 늘어난 혼혈인들은 어쩌면 우리 역사상에서 영웅(?)의 대접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해 싸운 이들이기 때문이다.
혼혈인은 자국의 전쟁도 아닌 이역만리 한반도의 전쟁에 동원된 이들이 남긴 흔적이다. 그러기에 혼혈인들을 더욱 더 우리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끌어안아야 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부분이 51년에서 57년생인 이들 혼혈인들은 그 출생에서부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고 이 사회의 음지에서 살아오고 있다. 대부분이 막노동판의 일용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의 가장 큰 바램은「이 사회가 자신들을 한국인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김치와 된장을 먹고 자란 이들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외모만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 다를 뿐 모든 부분이 한국 사람이다.
전후 세대인 이들은 대부분이 미군부대 주변의 기지촌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이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은 어릴 적 어머니의 나라 한국의 평화를 위해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공산군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한국혼혈인협회 회장 박근식씨(42세)는『우리들 대부분이 아버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전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2세인 우리들을 이 사회가 같은 민족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주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혼혈인들에게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2세 문제다. 자신들은 한국 땅에서 어떻게든 성장했으나 태어날 2세들에게 똑같은 아픔과 상처를 물려주기 싫어하는 게 이들 대부분의 바램이다.
아이가 문제가 생겨 학교에서 부모에게 상담을 요청해와도 자녀들의 심한 반대로 부모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게 혼혈아 2세를 둔 가정의 실상이다. 어떻게든 한국인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나「동물원 원숭이」보듯 하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냉대, 멸시로 변변한 직장도 얻지 못하는 게 이들이다.
현재 이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보사부가 펄벅재단 한국지회(회장=변창남)를 통해 등록된 6백 명 중 3백84명에게 한 달에 3만8천 원의 생계 보조비와 중ㆍ고등학생들에게 학비 전액과 예체능계 학생 15명에게 특별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뿐이다. 보사부의 혼혈인들을 위한 94년도 1년 예산은 2억3천9백만 원.
◆정부 보조 년간 2억
세계에서 유래없이 혼혈인 보조비를 지급하고 있는 정부로서도 할 말은 있으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한국 사회가 이들을 같은 민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에는 인색한 게 사실이다.
보사부 복지지원과 혼혈인 담당 김미숙씨는『현재 사회복지 예산에서 이들을 지원하고 있어 넉넉하게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면서『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나 당장 실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때 4천5백여 명이 넘어섰던 혼혈인을 대부분이 한국 땅에서 견디다 못해 아버지의 나라로 이민해서 살고 있고 그 숫자가 현격히 줄고 있다지만 우리 민족 전체가 이들의 복지와 생존권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한국전쟁 44년 째를 맞는 6월. 해마다 이 때가 되면 6ㆍ25를 상기시키고, 전쟁이 남기고 간 아픔을 되씹으면서 분단의 현실을 애통해 하는 게 우리 사회다.
그러나 이 전쟁이 남기고 간 혼혈인들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없는 게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이다. 전쟁의 희생자로 이 땅에서 죽어간 이들의 2세들인 혼혈인들이 전후 44년이 지나도록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국제화 개방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적으로 국경이 낮아지는 현대사회 안에서 단지 겉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을 언제까지 사회의 주변으로만 내몰 것인가? 다인종 국가인 미국처럼 되자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아픔 속에서 태어난 이들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하는 문제다.
외제 물건이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 외국 문화를 선호하는 사회적 풍토가 만연하지만 정작 한민족과 피를 나눈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무관심해왔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외국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 대우를 받기 일쑤이고, 거리에서 공동 장소에서 혼혈인라는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들은 어쩌면「정신적 장애인」들이다. 겉모습은 건장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으나 이들은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지고 있다.
박근식 회장은『혼혈인 문제는 우리 당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세, 3세에 걸쳐 후손 대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제하고『외국으로 도피(?)하지 않고 그래도 한국 사람으로 살려는 우리들을 위해 한국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대처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혼혈인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는 지난 82년「혼혈인 이민법」을 제정, 자신들의 2세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법에는 미군이 한반도에 처음 주둔했던 1945년부터 50년 12월 31일 사이에 출생한 혼혈인과 82년 10월 이후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아무런 해택을 주지 않고 있다.
◆미군「탁아소」운영
「혼혈인 이민법」은 한국의 혼혈인이 미국에 이민할 경우 미국 시민권을 주어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또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송탄에「혼혈아 탁아소」를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자신들의 2세 문제 해결을 위해 성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땅에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갈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와 한국민이 같은 민족의 구성원으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장애인, 도시빈민, 나환우들과 다르지 않은 이들의 처지를 감안한다면 한국 사회가 이들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71년 혼혈인들 스스로 결성한「한국혼혈인협회」는 이러한 측면에서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고 있다. 결성 당시 친목단체로 출발 혼혈인들의 복지와 사회 참여, 재활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고 있는 이 협회의 박근식 회장은『이러한 좋은 뜻에서 출발했으나 개개인들이 살아가기에 바쁘다 보니 뜻한 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고 밝히고『20년이 넘은 우리 단체를 정부가 정식 등록 단체로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보사부는 현재 정부 위탁 사업을 하고 있는 펄벅재단만을 공식 단체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
「가정의 해」에 맞는 한국전쟁 44돌을 지내며 잔인한 전쟁의 상처로 남은 혼혈인들과 그들의 2세를 한 민족으로 끌어안기 위해 우리 교회가 먼저 나서야 할 때다. 인간으로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한국 교회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태어난 한인 2세들을 위해 교회가 관심을 갖듯 한국 땅에서 태어난 똑같은 전쟁의 희생자들인 혼혈인들과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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