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리교육은 몇가지 교수방법 문제를 제기합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까지도 그 문제에 부딪혀야 했음을 압니다. 군중들에게 설교하실때 예수님은 청중들의 지능에 맞는 방법으로 가르침을 전하려고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칠때 그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을 참작하면서 예수님은 점진적으로 진행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공생활 후반에야 명백하게 고통의 길을 예고하시고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메시아로서 뿐만아니라「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당신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이 가장 구체적인 대화 가운데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시고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쉽게 이해되는 언어를 사용하심으로써 계시를 전해주신다는것도 주목합니다. 때로는 그분 자신이 질문을하고 문제를제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받아들이는 그룹과 사람들에 따라서 교리교육이 여러 형태의 적응을 할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분은 가르치라고 파견받은 교리 전부를 청충들에게 제시했고 들은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힐 때 메시지가 내포하는 신앙의 요구와 함께 메시지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빵을 많게 한 기적 후에 성체성사에 관한 그분의 말씀을 상기합니다. 반대와 탈락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자기의 가르침을 고수하시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습니다(요한 6、60~69). 당신 메시지 전체를 청중들에게 전하시면서 예수님은 빛을 주시는 성신의 활동에 의지했습니다. 성신께서는 예수님 친히 즉시 이해시킬수 없었던 것을 나중에 이해시키게 됩니다. (요한14、26 16、13참고). 따라서 우리도 교리교육을 적응 시킨다는것이 계시된 가르침(교의)의 내용을 축소시키거나 삭제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성신의 빛 아래 그리고 성신의 능력으로 신앙안에 받아들여지도록하는 노력을 의미해야 합니다.
◆적응문제
2. 유일한 스승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교회는 교리교육에서 복음의 빛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응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러한 적응의 노력은 진보적 교리교육의 전문화가 두드러진 최근에 현저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교리교사 양성기관이 많아지고 교육방법이 체계적으로 연구되였으며 더 효과적으로 종교를 가르치는 방법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이 계속되고 더 발전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적응문제는 문제가 많고 어렵습니다. 장소와 때에 따라 다르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제기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문제들은 새로운 사회홍보수단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하고 전통적인 교리교육 형태와 가장 현대적인 회람방식을 이용하는 교리교수도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전달하는 새로운 형태를 창안하려는 시도를 격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분야에 훌륭한 발의들을 모두 호의적으로 보아야하며 이 문제에 서구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치하해야합니다.
◆새로운 교수수단 이용
3. 그러므로 교리교육은 과거에 행해진것에 굳어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사도적권고「전수시켜야 할 교리교육」에서 내가 인정했듯이 교리교육은『개념을 넓히고 방법을 바꾸고 적절한 말을 찾고 메시지를 전달할 새로운 수단을 이용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와질 필요』(17항)가 있읍니다. 교회자신과 마찬가지로 교리교육은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합니다. 그 미래는 관계자 모두의 능동적 협조와 인간사회의 진보에 조심스럽게 개방할 것을 요구합니다.
새로와지기 위해서는 이루어진 결과를 반성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새로운 것이면 무엇이나 다 좋고 결실이 풍부하다는 원리로 춤발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한 방법의 효력을 경험으로 점정하는것입니다.
최근에 교리교수 방법을 발전시키려는 상당한 노력이 있었다지만 그럼에도 여러곳에서 결함이 있다는 불만이 잦고、몇가지 새로운 방법의 좋지않은 결과에 대한 불만이 잦다는 사실을 무시할수 없습니다.
1977년「시노드」에서 『교리교육 활동의 생동력과 기대되는 창의에 있어서 부인못할 진보와 대조를 이루는 한계와 결함』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전수시켜야 할 교리교육」17항) 이러한 결함들이 사용된 수단과 전수된 교의를 주의깊게 재검토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야합니다.
◆유기적으로 체계적이여야
4.「시노드」는 특히 즉흥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그르침이 필요 하다고 강조했습니다.『틀에 박힌것은 침체와 무기력과 결국 마비에 이르게 하는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즉흥적인 것이『교리교육을 받는 사람들 편에 혼란을 낳고 이들이 어린이들일 경우 부모들 편에 혼란을 낳으며 또한 온갖종류의 탈선을 낳고 일치에 금이 가고 결국에는 일치의 완전한 파괴를 낳는다』(상동) 는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의 프로그램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외에 다른 세가지 교리교수 특징을「시노드」토의 마지막에 상기했습니다. 교리교육은『논쟁되는 모든 질문들과 씨름해보겠다고 주장하거나 신학적 탐구나 학문적 성서주석으로 변형시키겠다고 주장하지않고 본질적인것을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교리교육이 크리스찬 신비의 초보적 선포로 그치지 말고 만족할만큼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크리스찬 삶의 다른 모든 요인들에 개방되는、온전한 크리스찬 입문이어야 한다』(「전수시켜야할 교리교육」21항)
완전한 가르침을 제공하려는 의지는 계시 전체에 충실하며 그것을 전하고싶은 믿음과 사랑의 자세에서 나옵니다.
믿음의 정신은 모든 크리스찬 교리교육에 필수적입니다. 더욱 적응되는 방법을 찾고 사용해도 믿음의 정신으로 감도받지 않은것일 때 충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학적 교육방법이 믿음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교리를 설명하고 전하기위해 최선의 방법을 찾도록 교리교사를 밀어주는 것은 믿음입니다. 교리교육의 생명을 이루는 것은 믿음이며 이 믿음이 종교적 가르침에서 교육 방법적인 모든 노력에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다른 한편 교리교육은 교회안에서 계시를 전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내용에 있어서나 방법에 있어서 그러한 전달에 고유한 구조에 의해 규제받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것은 성서、성전과 교도권과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포함합니다(「계시헌장」참고). 앞으로 이 구조에 대해 다시 말할기회가있을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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