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는 작은 자 안에서 성장이 됩니다. 사람이 고통이나 슬픔을 만나게 되면 작아지게 됩니다. 부끄럽고 허망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은 작아졌을 때 눈이 번쩍 뜨이게 되며 하느님 역시 작은 자 안에서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주 작게 보입니다. 바로 이것이 걸림돌입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긴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시련과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에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난 뒤에는 전 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으며 후에는 그리스、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갖은 고난을 다 겪었습니다. 실로 운명이 기구한 민족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제17、22~24)에 나오는 얘기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귀양 갔을 때의 일입니다. 나라는 이미 망했고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처참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희망도 없었고 미래도 없었습니다.
이때 예언자 에제키엘은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소망과 힘을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연한 가지의 작은 순처럼 보잘 것이 없지만 그 순이 자라서는 주위의 다른 나라보다 크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다고 해서 슬퍼할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작다는 것은 키가 작다는 것도 아니며 크기가 작다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가난한 자나 병든 자、실패한 자나 고통 받는 자 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 작은 자 안에서 빛나고 성장이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창녀나 세리、나병 환자나 귀머거리 등은 구원을 받았지만 잘나고 똑똑했던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 것이 없지만 그것이 자라서는 어떤 나무보다도 더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바라볼 때에 신앙은 겨자씨보다 더 작게 보입니다. 믿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믿어서 팔자가 고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바쁜 세상에 그것은 시간 낭비요 돈 낭비요 또한 정력 낭비입니다.『믿음이 밥 먹여주느냐』하는 말은 그의 단적인 예가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정말 우리의 팔자를 고쳐줍니다. 그리고 또 믿음이 밥 먹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로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밥 먹는 은혜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밝고 풍요롭게 사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돈이나 세상의 지혜로서는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작아져 봐야 그 오묘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잣집에 식모가 있었는데 과부였습니다. 부자는 사장이었고 돈도 많아서 부인도 자녀들도 호사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월급도 적었고 사는 것이 아주 오죽잖았습니다. 그런데 그 식모는 성당에 다니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일이면 머리를 곱게 빗고 헌금 돈을 챙겨서 성당에 가는 것을 볼 때마다 주인 식구들은 웃었습니다. 종교는 없는 자들이나 믿고 매달리는 허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이었습니다.
사장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돈도 소용이 없었고 의학 박사라는 지식이나 기술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심부름 왔던 식모 아줌마가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인생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나그네 길이니 세속의 때를 다 털어버리고 하느님을 믿어보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감격해서 울었고 잘못 살아온 죄악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차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식모 아줌마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저처럼 크고 위대한 사람이 있나 할 정도로 그 집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 딸이 먼저 믿었고 나중에는 사장 부인도 성당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돈도 지식도 믿음 앞에는 한낱 작은 티끌이요 먼지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믿음이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믿음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자들만이 믿음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진정 작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크게 누구보다 크고 위대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실로 작아졌을 때 믿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작은 자 안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작은 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은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작은 자가 아닙니다. 그 믿음은 세상의 어떤 지혜나 능력보다도 훨씬 크고 위대합니다. 따라서 작은 마음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그 안에서 건설하도록 합시다. 작은 자는 진정 큰 사람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