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로서의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실명의 고통을 딛고 맹인들의「밝은빛」으로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고 있는 허효숙씨(54세·베로니까).
경기도 수원시 율전동 65~3자신의 집에「화울로맹인써비스회」를 차려 놓고 맹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고취시키면서 맹인복지의 초석을 다져가고 있는 허효숙씨는 자신이 맹인이면서 맹인들의 밝은 등불이 되기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일 아침 맹인가정 방문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허효숙씨는 대부분의 맹인들이 스스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의 생활을 방관하고 있음을 통감、맹인들의 의식계발을 위해 한사람의 동료로서 또한 상담자로서 취침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생활을 바쳐오고있다.
80년「성 크리스토퍼 맹인클럽」을 조직、맹인생활과 실태조사에 나선 허효숙씨는 보다 효과적인 빛의 역활을 수행하기 위해 84년 5월「화울로 맹인써비스회」를 창설、맹인선교 및 재활의 발판을 구축했다.
같은 맹인으로서 맹인의 참된 빛이 되고자 자신을 던진 허효숙씨는 1956년 이화여대 미대 서양화과 졸업 당시만해도『맹인들의 얼굴조차 쳐다보기 싫었다』고 술회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없이 자랐고 미술가로서의 장래가 촉망되던 허효숙씨에게 길거리에서 노래하며 구걸하는 맹인들이 또한 바구니 하나에 동정을 바라면서 구걸하는 맹인들의 모습이 불쌍한 이웃、미래의 동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63년 미국으로 유학、미술가로서의 원대한 꿈을 키워오던 허효숙씨는 69년 11월 자신의 모든 야망과 희망을 무참히 꺽어놓게 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3차례에 걸친 대수술의 보람도 없이 영원히 세상의 빛과 멀어진 허효숙씨는 미술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두눈을 잃었다는 절망감으로 자신과 그리스도 모두를 철저히 부정하는 시절을 겪어야 했다.
정상인으로서의 사회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의사들의 비정어린 선고를 받으며 74년「아칸사스 맹인재활학교」에 입학한 허효숙씨는처음 점자책을 만졌을때 참을수 없는 설음을 맛보았으며 지팡이를 쥐었을때 그 촉감이 너무 싫어 몇날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의연한 태도、삶의 의욕을 체험하면서 허효숙씨도 조금씩 달라져갔다.
그후 카나다에 있는 정박아 학교에 취직한 허효숙씨는 78년 귀국、맹인들을 위한 본격적인 봉사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맹인복지에 관심이 많았고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이름을 빌어「화울로 맹인써비스회」를 조직한 허효숙씨는 과거에 자신이 맹인들을 대했던 태도를 철저히 보속하면서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사회사업」이 아닌「주님의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
현재 수원시내 50여명의 맹인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상담자로 활동하고 있는 허효숙씨는 보다 구체적인 맹인복지를 위해、또한 맹인들의 확실한 생계 마련을 위해 조그만 공예작업장을 물색하고 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허효숙씨는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를 방문、교회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지방유지들을 만나 맹인들과 직접 연결시켜 맹인들의 자립의지에 보탬을 주고자 노력하고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