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順
①베르나뎃따가 쓴 발현이야기
②성모님의 메시지
③루르드의 순례지ㆍ순례행사
④기적심사는 어떻게?
⑤기적은 어제도 오늘도…(기적사례들)
⑥베르나뎃따의 최후와 교훈
◆십자가의 길
베르나뎃따가 찾아와서 기도하던 성체현시 경당에서 왼쪽으로 길을건너 언덕을 끼고돌면 전장 약 1. 5km의「십자가의 길」이 나온다. 제1처는 로마의 스칼라 산따(예수님이 재판을 받기위해 걸어올라가신 빌라도총독관저의 돌계단을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에서 옮겨다놓은 것)를 본따 무릅꿇고 올라가도록 돌계단으로 돼있다. 물론 노약자들을 위해 걸어갈 수 있는 길도 따로 마련되어있다. 그러나 보속정신이 투철한 한국인 노인들은 칠순이 넘어도 즐겨 무릎을 꿇고 올라간다. 2m가 넘는 청동상으로 만들어진 각처가 약 1백m 간격을 두고 수려한 자연속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길모퉁이에서 모자가 상봉하며(4처) 언덕꼭대기에 높이 십자가가 서있고(12처)자연동굴을 배경으로 무덤을 마련(14처)한 이 십자가 길은 자연을 최대한으로 이용、주님의 수난현장을 생생히 재현시켜 놓았다. 1시간이 좋이 걸리는 이길을 따라 걸으면서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순례자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십자가의 길은 훌륭한 고백성사의 안내자 역할을 담당한다.
◆화해의 경당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면 사제관을 지나 즉시 화해의 경당이 보인다. 고백성사를 잘주기로 유명해져 만년에는 식사와 수면시간도 줄여가면서 하루17시간씩 고백성사를 주었다는 요한 비안네 성인상이 회개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성인상 뒤에 있는 경당내부에는 각 나라말로 고백성사를 볼 수 있는 50개의 고백성사를 준사제들은 한결같이 루르드의 진정한 기적을 고백소 안에서 체험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경당 바로 옆에는 기적수수송을 취급하는 사무실과 미사예약 사무실이 있다.
83년에 대구 윤임규 신부님이 인솔한 한국 순례단이 이 사무실에 동굴미사를 예약하러 갔을 때 이야기다. 매일 오후 5시에 이튿날의 미사시간을 배정받게 되는데 십자가의 길을 너무(?) 열심히 한탓으로 동굴미사를 청했을때는 이미 자리가 없었다. 멀리 한국에서 일생 처음으로 왔다고 떼를 썼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입장이라 담당사제에게 통할리 없었다.『여기까지 와서 발현동굴에서 미사를 드릴수가 없다니! 이럴수가 있나』하며 서운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사무실을 나와 애꿎은 담당사제의 무정함을 원망(?)하며 내려오는데、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담당사제가 손짓을 하며 다시 들어오라고 한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마침 폴란드 사제가 미사를 취소、7시 30분 동굴미사를 한국인들에게 주겠다는 말에 한국인 순례자들은 환호작약했다. 한국인들을 위해 자상한 배려로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고 짜릿한 감동을 맛본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순례봉사 사무실、안내박스、청소년 사무실、책자판매소、실물보관소 등이 갖춰져있고 환자들을 위한 병원시설과 의무실이 있으며 성역울타리 밖에는 박물관、전시관、극빈 순례자들을 위한 무료숙박시설、영화「베르나뎃따」만 상영하는 영화관 등 온갖 시설이 들어서있다.
◆까쇼
루르드 읍내에 들어가면 경찰서 뒤에 지금도「까쇼」라고 불리는 옛감옥소가 있다. 성모님의 발현당시 베르나뎃따 가족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은 너무나 철저한 가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좁은 공간이지만 제대가 놓여있어 소그룹 순례단은 여기서 미사를 드릴 수도 있다. 옆방에는 베르나뎃따의 유품이 몇가지 전시되어 있다.
베르나뎃따가 다니던 본당은 불타버리고 자리를 옮겨 새로 지은 본당을 들어서면 왼쪽에 베르나뎃따의 세례대와 불에 그슬린 세례문서가 보관돼있다. 이문서에는 베르나뎃따가 난지 3일만인 1844년 1월 9일에 세례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역사 가까이에는 베르뎃따가 하던 행려자 숙소「호스피스」(지금은 병원)가 있다.
◆바트레스
루르드에서 3km정도 떨어진 바트레스는 베르나뎃따가 발현 조금전에 살던 조그만 시공골동네다. 베르나뎃따는 한살때 어머니 친구인 마리 아라방의 신세를 졌다. 13세가 되자 어릴때의 신세를 갚기위해 농사일에 바쁜 양모(養母)를 도우러 바트레스에 와서 양도치고 집안일도 거들었다.
베르나뎃따가 즐겨찾아가기도 하던 마을 본당과 양모집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마을 어귀에는 조그만 기념당이 있고 그 기념당 언덕으로 1백여m 올라가면 베르나뎃따가 돌보던 양모의 양우리가 나타난다. 이 양우리앞 언덕배기에 앉아 묵주알을 굴리노라면『성인들의 목동시절은 성인이 되기위한 수련기와 같다』고 써놓은 양우리안의 글이 실감난다. 성인이 양들을 치면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대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누렸을 법한 천상적 평화가 이 조그만 산골 마을을 지금도 감싸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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