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에집트를 탈출했을 때 그들의 미래는 불안했습니다. 어디로 갈 것인가.「약속의 땅」에는 이미 다른 민족이 자리를 강하게 잡고 있었고 또한 그리로 가는 길목마저 사나운 적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치른 사막 위에서 먹을 것, 마실 것 등이 늘 걱정이었기 때문에 과연 에집트를 탈출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신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예생활에서 탈출하면 거기에 살 길이 보장된 미래가 환하게 열려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위험한 도전이었으며 그리고 그로 인해서 얼마나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습니다. 이때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준 사건이「시나이산의 계약」입니다. 하느님께선 불안해하는 그들에게 바로 그들의 하느님이요. 구원자이심을 천명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만 따르면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될 것입니다.
계약예식은 그렀습니다. 먼저 소를 잡아 그 피의 반은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항아리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계약서를 읽어준 다음에 그들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따르겠다고 다짐하자 항아리에 담겨있던「피」를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옛 계약(구약)이며 짐승의 피로 맺어진 계약입니다. 따라서 피로 맺은 계약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 계약을 어기면 막말로「피」를 봐야 합니다. 그러나 옛 계약은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불성실로 파기됩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계약이 필요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 확고하고도 분명한 계약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계약은 짐승의 피로는 안 됩니다. 그건 제물이 너무 약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려면 영원히 변치 않는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제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를 온전하게 바치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사제이며 동시에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런 예가 전에도 후에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음식으로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계약식에서 중요한 것은 식사입니다. 구약에서도 계약이 끝난 후에 그들은 하느님 면전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먹고 마심으로써 계약의 당사자가 되고 계약에 약속된 축복자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봉헌하시기에 앞서서 그 계약예식을 거행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최후만찬」입니다.
예수께서는 빵을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주님에서는 또 포도주 잔을 돌려 마시게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이제 계약예식에서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물이며 동시에 우리가 먹고 마셔야 할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옛날 백성(이스라엘)은 소를 잡아 그 예식을 기념했지만 오늘의 우리는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그 예식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인간에게 무상으로 내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밥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느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밥으로 내줄 수 있는 신앙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몸을 거저 먹게 되는 우리는 우리 자신도 아무 조건 없이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계약을 실천하는 길이요 또한 완성하는 길입니다.
언젠가 레지오 단장을 새로 뽑는 데 애로가 있었습니다. 사실, 단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녀님과 상의를 하고 꾸리아 단장과 협의를 했더니 아무개가 적임자라 해서 일단 마음에 작정은 했지만 그분이 워낙 바쁘신 분이라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한 번 찾아서 부탁을 드렸더니 그분 첫 마디가 그랬습니다.『신부님, 저는 신부님의 밥입니다. 신부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저는 그 대답을 듣고 감격했습니다. 대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에게도 속상한 일이 있고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땐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제 감정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저도 주님 앞에 나가 무릎을 끓고 아룁니다.『주님, 저는 주님의 밥입니다. 주님 원하시는 대로 잡수십시요.』이렇게 한 마디 하고 나면 영혼이 개운합니다. 예수님께 내 인생을 밥으로 드리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이 원하신다면 무엇을 피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음료수로 오셨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먹어도 죽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과 피만은 우리를 영원히 살릴 수 있는 최고의 음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음식을 무상으로 먹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을 위해 밥으로 제공하여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고 있으며 교회는 또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밥이 됩시다. 이것이 그분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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