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야 53,5)
주님의 ‘의로운 종’이 지고 가는 고통에 대해 탄식하는 이사야 예언서의 한 구절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 종이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멸시받고 배척받았다고 전한다. 그러면서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입조차 열지 않고 고난을 받았다고 탄식한다.
영화는 이어 겟세마니 동산의 스산한 숲 속에서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곧 다가올 처절한 고통과 죽음에 대한 예감에 인간 예수는 불안과 번민에 손을 떤다. 스스로를 다독이듯 제자들에게 “기도하여라”라는 말을 남기고 예수는 혼자서 저만치 숲 안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는 이전에 무수히 만들어졌던 예수 영화의 틀을 과감히 깼다.
■ 두려움에 떠는 인간 예수
메시아로서 애당초 예수는 자기 자신이 당할 난폭한 죽음에 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유한성을 고스란히 지닌 그는 두려움에 떨며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한다. 사탄은 그의 인간성에 기대어 한 인간의 힘으로 어찌 인류를 구원하겠느냐며 집요하게 유혹한다. 고난의 끝,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는 자신이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예수가 지상에서 겪은 마지막 12시간, 그 수난과 고통의 순간을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성경의 묘사에 충실하게, 그의 육체적 고통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미 피가 고여 터져버린 한쪽 눈, 매질을 당하던 석회암 바닥에 흥건한 피, 머릿속을 파고 드는 가시관, 나약한 육체를 짓누르는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의 무게, 손바닥과 발에 못을 박는 망치질, 나무를 뚫고 튀어나온 못 끝으로 흘러내리는 핏줄기…. 관객들은 너무나 폭력적인 구세주의 고통스런 장면들에 숨을 몰아 쉴 수밖에 없다.
■ 역사적 사실의 재현
도대체 감독은 왜 이다지도 예수의 고통에 집중한 걸까?
감독 멜 깁슨(Mel Gibson, 1956~)은 영화배우로서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혼이 “암에 걸린 중병환자와 같았다”고 고백했다. 그때부터 그는 예수 수난의 의미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인간 예수의 십자가 고통이 자신의 영적 공허를 치유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18세기 독일 신비주의자 앤 캐서린 에머리히(Anne Catherine Emmerich, 1774~1824) 수녀의 책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만난다. 이후 그는 우여곡절 끝에 사재를 털어 영화 제작에 돌입해 무려 12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영화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경험한 모든 허무와 절망을 치유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 수난을 다루면서 예수의 인성을, 특히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간 예수의 육체적 한계와 그로부터 빚어지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길 원했다. 육체가 누더기처럼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 그것이 역사적 현실이며 인간이 되어 수난한 구세주의 정확한 묘사라고 믿었다. 예수는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 바늘 한 땀의 고통까지도 온전히 느끼는 유한한 인간 존재였다.
■ 고통에 대한 공감
과도하게까지 느껴지는 예수 수난의 사실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는 ‘반유다주의’의 혐의와 함께 이 영화에 대한 거센 비난과 반발의 두 축을 이룬다. 폭력적 영상은 자연스럽게 선정성과 상업성의 혐의로 이어진다. 과연 감독은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예수의 육체적 고통에 그토록 집착한 것일까? 예수가 그리 고통스러워한 것은 단순히 감독의 상상력일까?
예컨대 영화는 예수의 살과 뼈를 파고드는 채찍질을 묘사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입을 벌린 상처와 낭자하게 흐르는 피를 그대로 보여준다.
예수는 몇 대나 매를 맞았을까? 전승과 기록에 의하면 당시 십자가 형벌은 성경이나 영화의 묘사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성녀 비르지타(Santa Brigida di Svezia Religiosa, 1303~1373)의 환시에 의하면 예수는 총 5480대의 매질을 당했다. 느리게 클로즈업되어 선명하게 영화 화면에 드러나는 예수의 육체적 고통은 어쩌면 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예수 수난의 ‘의미’는 고통의 ‘크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왜 예수가 수난해야 했는지에 대한 물음은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에 대한 호기심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관객은 역사의 예수가 인간의 고통에 얼마나 깊이 동참하는지를 눈으로 보면서, 내 죄를 보속하고자 고통 받는 종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통회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사순 시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