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시된 예문 가운데 참인 명제는?
①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다.
②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③평화는 힘에서 나온다.
④인간 세상에서 전쟁은 없앨 수 없다.
이 문제를 앞에 두고 당혹감이 밀려올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예시문 가운데 ‘참’이라고 생각되는 항목이 많을수록 왜곡된 정보에 오랫동안 노출돼 왔거나 잘못된 교육을 받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4개의 예시문 가운데 답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평화의 사도’로 불림 받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오랫동안 젖어온,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히 ‘참’으로 여겨온 명제들이다.
이 명제대로라면 ‘평화’를 하느님 은총의 선물, 사랑 그 자체로 가르쳐 온 성경의 가르침은 뒤집히고 마는 모양이 된다. 그러함에도 오랜 기간 교회 안에서조차 별다른 의심 없이 가르치고 배워 온 명제들이다.
어떤 것들은 그 연원이 깊어 절대불변의 진리로까지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이 대표적이다.
서기 4세기 고대 로마의 전략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Flavius Vegetius Renatus)가 자신의 책 <군사학 논고>에서 주장한 말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역설적 논리를 담고 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로 불리는 오랜 평화로 인해 약해진 로마제국의 군대를 재건하기 위해 베게티우스가 당시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에게 봉정한 이 책은 서양 군사학의 바이블로 자리 잡았다.
‘힘에 의한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다. 평화학에서 말하는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이 말은 로마의 힘으로 인해 세상에 평화가 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로마의 평화’는 강력한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나아가 군사력이 뒷받침된 강력한 로마가 존재함으로써 주위 국가들도 함부로 도전하지 않아 국제정세도 안정돼 많은 이들이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외형적으로는 틀린 점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현실의 이면에 숨겨진 권력자들의 욕망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권력을 지닌 지배계층들은 겉으로는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외부 위협을 과장해 적대감을 부추김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욕심을 채운다. 인류 역사는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그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세력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세력은 극소수이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은 절대다수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지배계층의 논리에 빠져, 또는 자신이 놓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해 평화가 아닌 전쟁의 길을 걸어온 것이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북한과 미국 간의 역학관계, 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나 평화를 외치는 이들을 향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라는 공격이 쏟아지기 일쑤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대다수는 여전히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행해지는 공격을 수긍하거나 받아들인다.
이것이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를 수없이 넘어지게 한 걸림돌이자 함정이다. 더구나 인류 스스로가 만든 함정이다.
모두가, 인류 가족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평화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이들이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화학에서 평화의 반대말은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평화학을 배우고 평화를 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위해 불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