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요한 복음서에만도 26번이나「나의 때」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우리는 읽게 된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의 어머니께서 술이 떨어졌다고 예수께 걱정을 말했을 때『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요한 2, 4) 처음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이 말씀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때는 예수님의 복음 전도생활이 전개되면서 사람들이 진실로 하느님 아버지를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 드리게 될 때라는 것을(요한 4, 23) 가르치셨고 죽은 사람들까지도 하느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생명을 얻게 될 때가 바로 그때를 가리킨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다시 말하면「예수의 때」는 구원의 때이다.
이제 십자가의 언덕 골고타를 눈 앞에 바라보시며 예수께서는 비로소『나의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수난의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이때를 절실히 느끼며(요한 13, 1) 기도하시면서도 하느님 아버지께「때가 왔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때는 당장은 십자가상 수난의 때이다. 그러므로 예수에게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때이다.
그러나 그때를 겪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때이며 십자가의 때를 거쳐 부활하심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는 좋은 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견디기 어려운 우민의 때요 당신의 목숨을 바치는 십자가의 때와 부활하는 영광의 때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인류를 실질적으로 구원하는 은총의 때이다. 그리고 결국은 하느님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는 개선의 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예수의 때」는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사람들에게 구원의 표시로 전개시키는 하느님의 구세사가 펼쳐지는 때이다. 이러한 원대한 미래를 내다보시면서『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하신 예수의 때이며,「이제는 나의 때가 왔다」라고 하신「예수의 때」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께 성전에 올라가서 그 훌륭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할 때에『너희에게는 아무 때나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요한 7, 6). 그때에는 반대자들이 예수의 인기를 시샘하여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던 때이다. 그때는 아직 예수께서 죽음에 대처할 때가 아니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악인들의 손에 잡혀 죽을 일만 남았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마지막 큰 일이었고 예수께는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나의 때가 왔다」는 말씀은 예수의 결연한 각오를 나타내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고난을 당하고서야 영광이 뒤따르는 운명을 타고 났을까.
예수뿐이 아니다. 이 고난 후의 영광이라는 운명은 모든 사람이 타고난 운명이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교육하실 때 이 진리를 힘주어 가르치셨다. 그리고 당신의 수난과 영광의 길은 한 길이라는 것을 여러 번 예언하셨다(마르 8, 31 : 9, 31 : 10, 34). 고진감래라는 동양의 지혜가 말해주듯이 고통없이 영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이 고통은 보통 아픔이 아니고 목숨을 희생으로 바치는 전적 인고이고, 그 후의 영광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보상의 영광이 아니다. 그 영광은 자기 한 목숨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이 사는 구원의 영광이며 이 영광은 하느님의 영광이다. 이 엄청난 진리는 자연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진리이기도 하다.
씨앗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 많은 곡식을 내지 못한다. 죽음은 많은 생명을 낳는 희생물이며 생명은 죽음을 밑거름으로 돋아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음의 뜻을 마지막으로 다짐하셨다.『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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