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교회 조직, 교리
그의 지나친 엄격주의적인 개혁으로 1538년 파렐과 함께 추방된 이후, 추방 기간 동안(1538~1541)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에서 피난온 사람들을 위한 피난민 교회를 돌보았다. 그는 신학자로서, 조직가로서, 교회 정치가로서 광범위한 활동을 하면서도 저술가로서「로마서 주석」을 포함한 여러 주석서들을 집필하고, 유명한「사돌레토(Sadoleto) 추기경에게 보내는 서한」(1539년)을 썼는데, 이 글을 통하여 그는 가톨릭교회와 완전히 결별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1541년에는 라티스본(Ratisbon) 의회에서 멜란히톤과 알게 되었다. 그해 그의 지지자들이 제네바에서 권력을 다시 장악하게 되자, 다시 제네바에 돌아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그의 개혁 원칙을 적용하며 신정정치를 폈다.
복귀하던 해 11월 당국에 제출한「교회 법규」는 신정정치의 토대가 되는 글로서 법률화되어 후에 칼빈주의 교회 정책에 골격을 이루었다. 이「교회 법규」에 제시된 그의 교회제도는 목사, 박사, 장로, 부제로 4개의 직무를 규정하고 있다. 목사는 설교와 성사 집행을 맡고, 박사(교사)는 신도들에게 성서와 칼빈의 교리를 가르치며 학교에서 강의하는 직무를 맡았다. 장로들은 평의회원으로서 종무국을 구성하고 신도들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시민들은 올바른 도덕생활을 하고 있는지 감독하였다. 곧이어 장로들은 시 전체를 통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아무 집이나 마음대로 들어가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 징벌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들은 시의회에 넘겨 속권의 처벌을 받게 하였다. 부제에게는 교회 시설을 관리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볼 의무가 주어졌다. 이러한「법규」를 통하여 이상적인 도시국가를 향한 투쟁이 시작되었는데 제네바 시민들의 사생활은 물론 독서, 경기, 노래, 회식 등의 자유가 통제되고 무용, 카드놀이, 소설책 읽기 등이 금지되었으며 심지어는 이발까지도 통제 받았다고 한다. 교통의 요지로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던 제네바의 자유주의자들의 강한 저항을 받았으나, 칼빈의 강한 의지와 엄격한 규율, 그리고 반대자들에 대한 가혹한 억압으로 극복하였다. 1542년부터 1546년까지 70여명이 추방 당하고 60여명이 사형 당했으며 또 화형까지 실시된 것을 보면 주민들의 어떠한 반대도 용납하지 않았다는 가혹성을 드러내고 있다.
칼빈신학의 기본적인 특성을 성서, 성체성사, 예정론, 교회론으로 나누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그의 유일하고 가장 완전한 신앙의 원천은 성서이다. 자기들의 성서 해석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성전의 증거를 모두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가톨릭교회에서 제시하는 성전의 가치와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신도 각자의 마음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주해하는데 교도권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성서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서로 반대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면 어느 편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한 올바른 해석이라고 판단할 것인가?『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요한 21, 25)인데, 교회의 권위에 의해 인정된 성전을 통하여 보존된 그 나머지의 일부는 무시해도 되는가? 사실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들고 있는 성서도 교회의 권위에 의해 확정되고 인정되지 않았는가? 만일 교회 교도권의 권위를 무시한다면 성서의 권위는 어떻게 되는가?
성체성사에 있어서 칼빈은 성찬식에서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실재하신다는 루터와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는 츠빈글리 사이의 중간 입장을 취했다. 즉 성체를 받아모시는 순간 잠정적으로 영적으로만 현존한다고 주장하였다. 예정론에 있어서, 그는 하느님이 원죄와 상관없이 이미 구원 받을 자들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의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될수 없고, 만일 구원에서 이미 제외된 자가 어떤 선행을 한다면 이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면서도 선행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의 표징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운명론에 빠지기 쉽게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교회론은 볼 수있는 교회와 볼 수 없는 교회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신앙을 외적으로 고백하고 지상의 교회에 완전히 예속된 자들만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있고 이들만 구원 받을 수 있으므로 칼빈교회 밖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조직가, 교회 정치가, 교육자이자 모든 개혁가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였다. 그는 신학적 통찰력과 주석학적 재능을 겸비하였으며, 자세하면서도 명쾌하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여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관한 주석들뿐만 아니라 개혁과 예정에 관한 다수의 논문들을 제네바에서의 통치 기간 중에 집필하였다. 4천여 통이 넘는 그의 서한은 그가 고전문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정치, 경제, 법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칼빈의 신학과 경제관이 서방 자본주의를 촉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으나 아직도 학자들간의 이론이 분분하다.
그의 저서 속에는 드러나시면서도 감추어 계시는 숨박꼭질의 명수이신 하느님이시요 성서와 예언자들의 하느님을 찾는 그의 열성이 배어 있다. 또 모든 점에서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려는 그의 열망은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을 연상케 한다. 다른 한편 여느 인간들처럼 그가 지닌 인간적인 한계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나치게 일방적인 가치관으로 상대방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비타협적인 독선과 극단주의적인 엄격한 윤리관은 극복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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