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보면 그 웅대함과 오묘함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무엇이 저 넓고 깊은 우주를 형성하고 운행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태양 하나만 봐도 너무도 신비롭습니다. 무엇이 저렇게 이글이글 타고 있는데도 끝이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학자들은 수소가 탄다고 합니다. 1초에 약 6억 톤에 가까운 수소가 타는데 1시간이면 2조 톤에 가까운 수소가 탑니다. 그것이 무려 45억 년이나 탔는데도 아직 반도 안 탔습니다.
태양은 또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1초에 약 17km 이상의 속도로 저 깊은 우주 속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혼자만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와 화성과 금성 등 태양계의 작은 별들을 거느리고 달려갑니다. 그러면 태양의 무엇이 이 별들을 끌어당기면서 달려가고 있을까요. 학자들은 중력이라고 합니다. 그 중력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수십억 년 동안 지구로 하여금 1분 1초도 틀리지 않게 자신을 공전하게 하는 것입니까. 모릅니다. 다만 보고 감탄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만 해도 너무 오묘합니다. 지구가 현재처럼 23.5도로 기울어져 있어서 사시사철의 계절을 구경할 수 있지 만일에 그 각도가 기울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사람 살 곳이 되지 못했을 정도로 뜨겁거나 춥거나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의 면적이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물의 순환이 이루어져 생물이 존재하고 있지 만일에 바다보다 육지가 더 넓었다면 지구는 죽음의 땅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는 대류권의 층의 두께도 지금보다 더 높거나 낮아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됩니다. 그렇게 볼 때 무엇 하나 오묘하고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구는 차치하고라도 인간의 육신 하나만 해도 너무 신비롭습니다. 여러 장기들과 뇌의 기능을 보면 컴퓨터보다 수천 수만 배 더 정밀하고 치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식을 섭취하면 각 장기에서 양분을 흡수하고 저장하며 배설하여 순환시키는 그 모습과 기능들을 보면 위대한 공장이요 산업 시설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놀라운 약동이요 환희입니다. 무엇이 저것들을 형성케 하고 또한 운행케 하고 있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하거나 하며 또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인간은 인간 자신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작품인 우주만물 그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뚜렷하고도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작품을 인간의 눈과 머리로서는 온전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탐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하느님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 자신도 모르는데 어찌 감히 하느님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태양이나 우주보다도 몇만 배 더 놀랍고도 위대한 신비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사람이 되시고 어떻게 죽음에서 부활로 빠스카 하셨는지 또한 성령이 어떻게 우리와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머리와 지혜를 통하여 그분의 신비를 파헤쳐 보고 또한 적으나마 맛 들여봐야 합니다. 그것이 또 하느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신비를 말할 때에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씁니다. 인간에게 인격이 있다면 하느님께는 위격이 있습니다. 그 위격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각각 다르고 독립적입니다. 세 위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체는 오직 하나입니다.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절대로 세 분이 아닙니다. 위격이 셋이면 세 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 위격을 가지셨으면서도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 개념이나 지식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믿어야 합니다.
성서에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이것은 성서의 가르침을 토대로 해서 교회가 만들어낸 신학적인 용어입니다.「하느님」이라는 단어도 그 자체는「하나」라는 단수이지만 그러나 그 내용은 성부, 성서, 성령의 세 위격이 이루는 복수가 됩니다. 마치 가정에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으며 자녀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가정은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물론 크게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삼위일체에 대한 명백한 신앙 고백입니다. 이 신비야말로 모든 구원 질서의 원천이요 또한 우주 만물의 형성과 운행의 근본입니다. 모든 에너지가 거기서 나오면 모든 완성이 그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야 합니다. 사랑의 완전한 일치요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을 닮고 따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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