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우리 엄마, 아빠가 거지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 소외되어왔던 나환우 가정의 아픔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자녀가 성장해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부모에게 사랑하는 이를 소개시키지도 못하고 결국 부모가 나환우였다는 병력으로 혼인이 성사되지 못해 울부짖는 자녀를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어떨지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천형으로 불리워지던 나병. 그래서 나병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 버림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동네로부터, 사람 사는 곳으로부터 이들을 내몰아왔던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
현재 경기도 양동에 위치한 나환우 정착촌인「상록촌」에 살고 있는 이상봉(프란치스코·41세)씨는『우리는 정상인과 똑같은 사람이다』고 토로하면서『화상을 입은 환자 같이 나병으로 인한 자국이 남아있을 뿐이지 사회로부터 격리될 만한 심각한 상태는 더더욱 아니다』고 힘주어 말한다.
부인 김인옥(아가다·41세)씨와 10년 전에 결혼, 지금은 슬하에 국민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광희(야고보)와 함께 돼지 사육을 하며 살고 있는 이들 가정은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떠밀려 표류하는 인생
그러나 이상봉씨가 살아온 길은 그 몸에 남아있는 상처 만큼이나 험난하기만 했다.
정확히 국민학교 3학년 때인 10세 때 나병이 발병했으나 모르고 1년이 지난 후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나병 선고(?)를 받았다는 이씨는 그 후 질곡의 세상을 헤치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가고 싶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던 그 어린 나이의 이씨 모습은 상상도 하기 힘들어 피부에 와닿지도 않지만 본인은『마치 깜깜한 암흑 속에 홀로 떠밀려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이렇게 숨어 살기를 8년. 이웃들에게 우연한 기회에 나환우임이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이씨의 집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기게 됐다. 자연히 이씨 집의 가세는 기울게 되고 꿈 많던 18세 청년 이씨는 보따리 하나 달랑 지고 흙먼지 가득한 황토길을 가로질러 소록도로 떠나야만 했다.
숱한 고생을 겪으면서 살아온 이씨. 그런 이씨에게 소록도는 무서웠지만 그래도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이유로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했다. 친구도 친척도 심지어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이들이 모여와 함께 뒹굴며 새롭게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그곳 생활이 그래도 좋았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부친 임종 소식도 몰라
소록도에서 5년을 살면서 치료를 받았던 이씨는 부친의 임종 소식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소록도에 들어간 지 2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가까스로 고향에 가보니, 이미 아버지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이상봉씨는『이 아픔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며 말을 흐렸다.
거의 완쾌되어 소록도를 나온 이씨에게 세상은 암울하기 그지 없었다. 성한 몸을 갖고 일자리를 찾았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쓰라린 체험을 해야만 했던 이씨. 이런 사회에 대한 반발로 방황을 해야 했던 이씨가 결국 정착한 곳이 고향 양평에서 멀지 않은 현재 살고 있는 상록촌이다.
무일푼으로 이 마을에 들어와 남의 집살이를 몇 년 했던 이씨는 이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비록 사회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고 있지만 떳떳하게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이씨의 가정은 그런 대로 행복한 편이다.
◆경제적 자립 위해 심혈
결혼 후 아내 이옥씨가 3년간을 매일 저녁기도를 바쳐도 무심하기만 했던 이씨는 이제 주일미사를 궐하는 법이 없다. 더군다나 이씨는 현재 이 마을 대표로 자신의 일보다 마을 공동체 일을 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마을 나환우 중에서는 제일 젊은 편에 속하는 이씨는『나환우 가정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자립이 우선』이라고 말하면서『돼지 사육이 주업인 상록촌의 경우 91년까지 공동 사육을 고집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타 정착촌보다 뒤지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환우들이 사회 속에서 인간답게 살기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사회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 1백곳에 정착촌이 있고 매년 나병 발병이 1백 명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여서 더 이상 나병이 예전처럼 불치의 병이거나 천형으로 불리워져서는 안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한국가톨릭나사업연합회 김형두(요셉·60) 국장은『91년도 교회에서마저 구라주일이 없어질 정도로 나병은 이제 보통병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하고『그렇지만 아직도 나환우들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이들의 가정이 사회 속에서 인간답게 살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자녀들 사회 소외문제
특히 나환우들의 2세들은 정상인과 다를 바 없지만 성장서부터 소외감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실정.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정착촌이 아닌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사귀기도 어려울 뿐더러 따돌림 받기가 일쑤인 2세들이 성장해서 사회에 적응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결혼 적령기가 된 2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혼사가 오가도 제대로 부모들을 소개할 수 없고, 정작 혼사가 성사되어도 결혼식장에 나가기를 꺼려하는 것이 부모들의 입장이다.
현재 정착촌에 있는 대부분의 나환우들은 생활보호 대상자로 분류가 되어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에서 이들의 나이가 점점 고령화되고 있어 기존의 정착촌 기능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점점 고령화되어 거동이 불편한 나환우들을 위해 기존의 격리 또는 수용 위주의 정착촌에서 요양시설이나 양로원 기능을 할 수 있는 시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재 성 프란치스꼬 남자수도회가 이런 취지 아래 산청에 있는 나환우 수용시설을 요양원으로 바꾸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
◆그릇된 선입관 불식을
우리는 20여년 전 나환우의 아이들을 해외 입양을 시킨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그렇게 국외로 쫓겨난(?) 나환우 자녀들은 지금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서양 사회가 나환우 자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시켰다면 우리도 못할 리 없다. 특히「가정의 해」를 맞는 올해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보자. 우리의 안방에서 이들과 함께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변화되어 보자.
나환우들의 아버지 고(故) 다미안 신부가 곧 시복된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오늘, 아직도 나환우였다는 사실만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심지어 인간성마저 피폐화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가정의 해」인 올해 우리는 나환우 가정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