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의 생애는 그의 놀라운 기적들로 인하여 그 소명의 특징이 잘드러난다.
5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적국이었던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이 문둥병으로부터 치유받는 기적이다. 왕의 총애를 받던 나아만 장군은 천벌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문둥병환자였다. 한번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데려온 어린소녀로부터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선물과 왕의 친서를 들고 이스라엘 땅으로 엘리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엘리사는 직접 만나주지 않고 사람을 시켜 요르단강에서 일곱번 몸을 씻으라는 전갈만 한다. 이에 나아만은 자기의 직위를 보아서도 직접 영접하고 친히 병을 고쳐주려니하고 잔뜩 기대한 생각이 무산되어 버리자 노발대발하여 발길을 돌린다. 이에 그 부하들이 그 보다 어려운 일을 하라 했다면 했을 일이 아니냐고 하면서 믿고 한번 씻어보라고 권유하자 그래도 하니 어린아이 피부처럼 깨끗이 낫는다. 이방인이었던 나아만은 그 저주스런 나병으로부터 치유되자 마음으로부터 야훼를 찬양하여『이제부터는 야훼외의 어떤 신에게도 제사를 드리지 않으리다』하고 하느님의 능력을 찬미한다.
6장에서는 시리아의 침입을 막는 엘리사를 통해 초인적인 능력으로 당신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으로 드러나신다. 이와같은 장들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하느님 일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느님도 되신다는 하느님의 우주적 보편성을 볼 수 있다.
엘리사는 하자엘이 시리아의 왕이 될 것을 예언하고 혁명에 의해 왕권을 탈취한 오므리왕가의 말로를 예언한다. 사마리아를 북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오므리는 성서 외의 전승에서는 이스라엘 王으로서 정치적 수완을 가진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이 오므리왕조는 야훼 신앙을 종식시키려는 정책으로 예언자 집단을 박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갖가지 부정부패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원한을 쌓아갔다 따라서 민중이 정권교체를 간절히 염원하던 차에 엘리사는 예후 장군으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키게 추진시킨다. 이렇게하여 요람왕을 마지막으로 한 오므리 왕가는 종식을 고하고 야훼신앙을 먹칠케한 이교신앙의 선동자 이세벨은 예후의 명령에 따라 내시들에 의해 떨어뜨려져 그의 피가 담벽과 말에 튀면서 해골과 손발만 남겼다는 처참한 말로는 자기행위에 대한 대가였다(7-9).
새롭게 등장하는 예후는 성스럽다기 보다는 부패된 왕조를 멸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폭력적인 인간이라는 인상이 짙다. 그를 통해 벌어지고 있는 유혈극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느님께 대한 참된 믿음은 생사의 문제로서 예후가 우상숭배의 근절자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유혈극을 통해서라도 정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시대의 우상숭배의 만연으로 따라오는 사회의 부패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북왕조는 쿠데타로 인한 유혈참변속에서 수없는 정권교체가 있었고 그 가운데 갈수록 야훼를 더멀리 떠났으며 남왕조 또한 다윗왕가를 잇는 가운데서 왕들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심지어 인신제사까지 올리어 백성들을 그릇 인도한다.
이와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엘리사의 역할은 그 만연하는 불의에 저항하여 예언자집단의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여호아스왕(802~787)이 엘리사의 임종앞에『병거여 기병이여』할만큼 군사적으로 큰힘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에 보인 깊은 연민과 배려는 왕들의 행위를 고발하는 것으로 예언자를 통해 당신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야훼를 증언한다. 그는 죽은후에도 능력을 발휘할 만큼 국가의 방향을 제시한 예언자였다(13). 하느님을 대변한 예언자의 소리는 오늘 우리 세대가 가장 귀 기울여야할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삶으로서 불의를 자행하는 무리들의 양심을 일깨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북왕조의 계속되는 비리는 이제 북이스라엘이 고대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앗시리아(고대 나찌라고도 불림)의 사르곤 2세에게 기원전 722년에 완전히 패망하고 백성들은 앗시리아로 끌려갔을뿐 아니라 이교민족을 사마리아 등지에 접목시킴으로써 이제 사마리아는 잡신의 소굴이 된다(17).
결과적으로 신약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을 적대시하는 이유는 여기서 이미 발아한 것이다. 그들은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순수성을 유지못한 탓으로 정통 유다인들로부터 심한 멸시를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전철을 밟아 그들은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한분이신 야훼를 저버렸기 때문에 나라를 잃었다고 저자는 반성한다.
아무도 하느님을 뵌분은 없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배우고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하느님이심은 결국 신앙의 차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총의 선물임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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