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몸이 굳어져가는 무서운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삶에 지친 사람들의 다정한 말벗으로서 진정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박보현 씨(오틸리아 36세).
서울 도봉구 미아 8동 315의 70 자신의 집에 누워 오직 말을 할수있고 생각할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생존을 확인해 나가고 있는 박보현씨는 전신마비의 절망적인 고통중에서도 삶에 지친 사람들의 짜증어린 하소연을 들어주는 조그만 일 하나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전교를 해오고있다.
18년전 한창 꿈많던 여고 2학년때 신장염을 앓으면서 기나긴 투병생활에 들어가야 했던 박보현씨는 발끝에서부터 상체까지 서서히 몸이 마비돼가는「근육위축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철저한 좌절감과 실의를 맛보면서 생의 의지를 상실해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키에르 케고르가 지은「죽음에 이르는 병」을 얽게 된 박보현씨는 자신을 죽이는 것은 육체를 마비시켜가는 병이 아니라 생의 의지를 잃고 방황하는 심성의 나약함이라는 것을 인식하게됐다.
한권의 책이 가져다준 충격은 무척 컸다. 생의 의지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 박보현씨는 투병생활 7년만인 74년 첫영성체의 기쁨을 맛보면서 육체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힘든 작업을 시작했다.
자신과 자신의 병밖에 알지못했던 박보현씨는「작은 그리스도」로 불린 고 김근영씨(안또니아ㆍ애덕의집 창설자)의 희생적인 삶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주위에 방치되고 있는 정신적 불우이웃들을 보기 시작했다.
삶에 지치고 물질에 궁핍해서 정신의 평온함을 맛보지 못하는 수많은 이웃들을 접한 박보현씨는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면서 자신이 움직일수 있는 최대의 영역에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나갔다.
휠체어를 타고、부축을 받으면서도 투병생활을 통해 느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성서봉사자로서 또한 다정한 말벗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박보현씨는 금년 5월 합병증이 발생、완전히 자리에 눕기까지 정상인보다 더 활동적이고 열성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해왔다.
3년전부터 팔에도 마비증세가 번져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박보현씨는 꾸준히 찾아오는 이웃의 다정한 말벗으로、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생활에 지친 이웃들의 밝은 빛이 될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박보현씨는『나를 위로하러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위로받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분명 그리스도는 고통받는 이웃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심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잠실에 집을 하나 빌어「깔멜모임」을 이끌어 나가면서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를 구상했던 박보현씨는 현재 일체의 활동을 멈춘채 24시간을 누워서 보내고 있는데『온몸이 마비되는 순간까지 사랑을 일깨워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고통을 기쁘게 받아 들여 나보다 더 고통받는 이웃들을 기억하겠다』며 18년간의 병고를 승화시킨 신앙의 힘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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