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를 따르던 군중과 순례자들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는 길에서「다윗의 아들」을 외치며 환호성을 올리는 동안 예수의 일행은 드디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다. 올리브산을 내려와 케드폰 계곡으로 내려오면 눈 앞에 성전의 동쪽 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가면 성전 경내를 지나 직접 예루살렘 시내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먼 길로 돌아다니는 우회길을 피하느라고 흔히 이 길을 택한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팔 물건들을 나를 때 이 길을 이용했는데(마르 11, 16) 그 팔 물건들이 소나 양떼라면 이 짐승들을 몰고 성전 뜰을 지나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다.
하여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온갖 소란에 휩싸였다. 예수 때문에 소란스러워진다는 것은 곧 박해가 닥쳐온다는 낌새를 나타낸다. 예수의 탄생시에도 온 유대아 나라가 술렁거렸다(마태 2, 3절). 그때에는 동박박사들한테서『유대아인의 왕이 나셨다』는 말을 듣고 소란스럽게 되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 시내에 들어오신 예수라는 사람이「누구인가」라는 신원 확인 때문에 술렁이었다. 탄생시의 유대아의 왕이라고 전해졌던 일은 지금에 와서 깡그리 잊혀졌고 바로 어제 사람들이「다윗의 아들」이라고 환호하던 소리에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이었을까. 예루살렘의 몇몇은 예수를 알아보고 예언자 정도의 인물이라고 깎아내렸다.『그는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의 예수요?』이 대답은 예수의 신원을 밝힌 첫 번째 선언문이다.
갈릴래아, 이 지방은 예루살렘 안에서는 경멸의 대상이 되는 촌구석이다. 더군다나 나자렛이라는 동네는 성서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깡촌 구석이다. 그러니 나자렛의 예수라는 호칭은 그들이 경멸의 뜻을 담고 붙인 이름이다. 그들은 이 이름을 예수의 십자가에도 붙였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반대자들의 호칭은 이렇듯 대조적이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를 이렇게 부름으로써 예수를 하찮은 인물로 비하시키고 자기들도 안심하려고 애썼다.「다윗의 아들」이라고 외쳤던 이 사람은 나자렛에서 온 예언자에 지나지 않으니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걷는다」(마태 11, 5절). 이것이 이사야와 세례자 요한이 제시한 메시아를 알아보는 표였다(이사 61, 1). 이제「나자렛의 예수」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소경들과 절름발이」들을 고쳐주셨고 아이들은『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고 있었다.『어린이, 젖먹이들이 노래합니다. 주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라고 시편에서 읊었듯이(8장 2)「똑똑하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신」(마태 11, 25) 하느님의 뜻이 오늘 여기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예수께 항의하였다. 왜 항의했을까. 그것은 성서의 말씀과 저들의 전통에 어긋난다는 항의였다. 그 옛날 다윗왕이 여부스인들의 도시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했을 때 소경들과 절름발이들 이름으로 다윗이 비웃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자기 도시로 만든 다음 적들을 벌하는 뜻으로 소경들과 절름발이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지하였고 이 규정은 전통으로 지켜졌다. 그러니 성전에서 이들을 고쳐주고 그들의 환영을 받는 것은 대제관들과 율법학자들 눈에는 몹시 거슬리는 일이었다.
그리고『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는 메시아적 호칭을 아이들이 외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예수는 그들에게는 비웃음의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부터 온갖 불구의 병신들이 하느님의 성전에서 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하느님의 지혜가 철부지 어린이들 입에서 노래로 불려질 구원의 때가 온 것을 그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입을 다물었다면 돌들이 외쳤을 것이다. 어린이와 돌들은 아라메아어로 비슷한 발음을 한다. bnaija 와 abnaija이다. 예수의 대답이 얼마나 정교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예수께서는 성 밖을 나와 여행의 본거지 베타니아로 되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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