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1월 19일
늦잠을 자고 11시경에 일어나 국선도 수련을 했으나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오후 3시 30분 주일미사에 참례했더니 신부님께서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에게 인사를 하라시기에 부득이 제대 앞으로 나가 인꼴라 마리애에 대한 개략적 설명을 하고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당일 주보에는 나의 도착 소식과 향후 1년간의 할 일에 대해 소개돼 있었다. 세심하신 신부님의 배려에 머리 숙여 감사드릴 뿐이다.
■92년 1월 26일
눈이 얼어 붙어 길이 몹시도 미끄러웠다. 정해진 속도로 조심하며 운전해 가는데 경찰이 속도 위반이라며 막무가내로 벌금 고지서를 들이민다. 길도 미끄럽고, 어저께 캐나다에서 와서 길도 서툴러 과속을 할 수 없다고 항의해 봤으나 헛수고였다. 성당에 도착하니 벌서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정말 맥 빠지는 일이었다.
■92년 2월 2일
내 나이가 벌써 50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음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가슴 깊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토론토에서 여기까지 12시간 가까이 운전해 왔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한 것 때문인지 요즈음 나의 건강이 무척 안 좋은 상태다.
『이대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과연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주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다가와 괜스레 마음을 울적이게 만들었다.
그간 밀렸던 피로가 어제 결정적으로 나타난 듯했다. 어제는 그간 미뤄 놓았던 일을 정리하느라 아침식사를 거르고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최 신부님이 찾아오셨다. 본당 문제 때문에 상의코자 오셔서 함께 차를 타고 최 미카엘씨 가게로 가던 중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며 앞이 보이질 않았다. 스파게티를 한 접시 먹고 나니 기운이 회복돼 앞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최 부회장과 얘기 잘 끝내고 윤 회장 가게로 갔으나 필라델피아에 초 사러 가고 안 계셔서 강미카엘ㆍ홍미카엘 가게에 들러 격려하고 아파트에 도착했다. 신부님은 곧 바로 체리힐로 가셨다.
모처럼 일찍 들어왔기에 느긋이 좀 쉬어보려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밀린 일지를 썼다. 시장기가 돌아 부엌에 가보니 식은 밥이 조금 남아 있었다. 찬물로 끓여서 김치와 아내가 준비해준 깻잎으로 배를 채웠으나 절대량의 부족으로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밤 늦도록 계속 일지를 쓰다보니 배가 고파와 다시 부엌으로 갔다. 한밤중에 초라한 밥상 앞에 홀로 앉아 몇 술을 뜨다보니 처량한 기분이 들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오늘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임요셉씨와 함께 미사에 참례했다. 8명의 영세예식을 포함한 주의 봉헌 축일미사는 2시간 20분여에 걸쳐 장엄하게 치뤄졌다.
사무장과 의논할 것이 있어『사무장님』하고 부르는 순간 어제의 그 증상이 또 다시 밀려왔다. 즉시 3층 끝방으로 올라가 쉬고 있는데 최 신부님이 올라오셔서 걱정을 하셨다. 10분쯤 후에 식사하러 오라고 해 반쯤 감은 눈으로 더듬고 가서 밥을 먹으니 차츰 회복되었다.
이렇게 찾아오는 침침한 눈 증세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자고 나면 괜찮고 잠시 눈 감고 있으면 회복되는 마치 꾀병 같은 이 증세.
그냥 좀 쉬었으면 하는데 최 신부님이 체리힐에 가자시기에 또 따라나섰다. 오후 3시 30분에 있은 미사 중「만찬의 전례」때부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주님, 당신의 찢겨진 상처! 이마와 볼에 피를 줄줄 흘러내리게 하던 가시관의 상처! 골고타 언덕길에 쓰러지기가 그 몇 번이었던가!』
권능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수고 수난하신 모습에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춰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주위의 신자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손수건이 없어 마냥 양볼로 눈물이 흐르게 할 수밖에 없었다.
미사 중에도 흐려지는 눈 증세가 엄습할 것 같은 공포 속에 눈을 감고 있으니 피로와 배 고픔, 밤중에 부엌에 달려가 밥 짓던 모습 등 어젯밤 그 초라한 밥상에서 느끼던 감정이 되살아나며 어느새 마음은 토론토의 집으로 달려가 외로이 남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가정을 돌보는 일도 가장으로서 첫째 가는 임무인데 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양심 가책과『네 아비의 장례식도 뒤로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이 나의 머릿속에서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인꼴라 마리애와 처자와의 사이에 갈등을 겪어야 하는 내 신세. 진퇴양난에 빠진 듯한 착각과 처자에 대한 간절한 사랑과 정이 나를 슬프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했나 보다.
주님의 은총, 주님의 고통과 애 태우시던 어머님의 모습, 지금의 착잡한 상황들, 내 가족들, 이 두 작은 공동체 안에서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아픔들, 가여운 온갖 인종들, 주님은 과연 무엇을 원하시기에 이토록 복잡하게만 섭리하시는가? 무엇 하나 뚜렷이 종잡을 수 없는 막연한 상념에 그저 서글퍼서 나온 눈물인가? 이제 겨우 3주밖에 안 됐는데 이토록 나약해져서야….
우리들을 이끌어가시는 모든 사제들의 일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외롭고 고달픈 자신의 삶 뒷바라지에 얼마나 짜증스러울까』『시한도 없는 끝날까지의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분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간절해졌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분심에 헤매이던 중 어느덧「평화의 인사」시간이 도래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92년 2월 3일
이곳에 와 있는 동안 놀랍게도 가장 일찍 취침한 어젯밤이었다. 푹 자고 나니 피로가 많이 풀렸다. 기분도 상쾌해 냉수 한 잔을 들이키고 책상에 앉아 어제 미사 때 주보에 적어둔 것을 정리하니 8시 15분이었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내 머리와 책상 머리를 세차게 내리쬐는 가운데 성무일도와 아침기도를 바쳤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