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신학자이면서 본당 사목활동에 종사하는 마게사는 토착화가 동아프리카에서 두 가지 차원에서 즉 공식 차원의 토착화와 민초 차원에서 진행된다고 보면서 이들의 대조적 성격을 제시한다.
1, 마게사는 교회 당국에 의해 추진되는 공식 토착화 과정은 비현실적 추상에 머물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학자들이나 교도권 당국은 있는 그대로의 토착화 사실을 그리려 하기보다 그들이 원하는 토착화 그림을 제시한다고 평하면서 두 가지가 필연적으로 동일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마게사에 따르면 소공동체 운동과 관련된 많은 작업들이 관념적이고 실천적이지 못한 데서 이 위험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 소공동체들은 현재 이 지역 가정과 친지 체계와 평행선상에 위치하고 양자간의 관계에서 상징적 연결고리가 애매모호하거나, 아니면 아예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소공동체들이 동아프리카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는 친척 내지 친지체계를 대치하려는가. 아니면 이들과 통합하려는가? 소동동체 운동과 관련된 이러한 질문들은 결코 만족할 만큼 충분히 응답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마게사는 소공동체 운동이 동아프리카에서는 학자들과 주교들의 특별 관심사로서 하나의 계획으로 파악될 뿐이라고 규정한다.
마게사는 지도자들의 계획으로서 소공동체 운동이 밑바닥 신자들의 수준에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처지에 있으며, 아프리카 민초들이 매일 같이 직면하게 되는 사회적 부패와 불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도록 이끌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그에게 토착화의 기본 요소로서 소공동체들은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대부분 실패한 것으로 진단한다.
2, 마게사는 일반 백성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토착화 과정은 근본적으로 직관적이고 자발적으로 아프리카의 마음과 영혼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본다.
일반 백성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토착화는「사고기획」으로서보다는 하나의「존재 양식」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세계관과 서방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이 일치하지 않고 상위성 내지 상반성을 드러낼 때에 어려움과 혼란이 야기된다. 이러한 모순과 영원히 살 수는 없는 일이므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진다.
민초 수준에서의 토착화가 본시 직관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하나의 체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동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와 주체성, 그리고 문화 범주의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아프리카인들은 기관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공동체는 공동 세계관으로 하나가 되는 사회적 전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 특성들을 고스란히 지니는 동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본래의 종교성을 간직하면서 그리스도 신앙을 수용하는 가운데 그들의 역사와 집단적 주체성을 형성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두 개의 세계관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겨루는 기관적 공동체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안에서 토착화가 비롯하고 지속된다는 것이다.
마게사는 북동 탄자니아 빅토리아 호수변에 위치한 시라리에 소재하는 본당에서 바쿠리아 부족 가운데서 일하면서 체험한 사례를 들어 일반 백성들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토착화의 실상을 소개한다. 매 3년마다 부족의 모든 10대 총각들은 할례를, 그리고 처녀들은 음핵절 제례를 받아야 한다. 이 의식은 부족민들에게 있어 종교적이고 사회적 함의를 지닌 매우 중요한 통과의례이다. 1992년이 할례가 거행되는 해였다. 의학적으로 소독이 이루어진 가운데 수술을 실시함으로써 AIDS 바이러스의 확산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동기에 이끌려 마게사는 자기 본당에서 의료진들을 각 공소로 보내어 가톨릭 신자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그곳에서 할례를 받도록 독려하였다. 그리고 그는 음핵 절제술은 수용 불가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맹렬하게 이를 반대하였다.
마게사 신부 등의 노력은 본당 사목회의로부터 전적인 지지를 받았다. 신자들은 이 노력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할레 시기인 1992년 12월이 되자 문자 그대로 수백 명의 신자 젊은이들 중에서 단지 25명의 총각만이 본당 신부의 요청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였고 20명도 채 안 되는 처녀만이 수술 받기를 거부하였다.
마게사 신부는 많은 사람들이 본당 측 운동을 말로는 환영하였으나, 실제로는 달리 행동하였기 때문에, 운동은 실패하였다고 규정한다. 그는 모든 상징적 지침과 기도들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할례의 의미가 부족들에게 무엇인지를 충분히 평가하는 데 실패하였다고 토로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 부족민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들의 전통적 축제를 그들의 가정이나 교회에 제공된 기도 요청과 결합시켰던 것이다.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이 경우에 이미 존재하는 종교적 전통들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함이 입증되었다. 마게사에 따르면 그곳 주민들 중 AIDS 바이러스와 그것의 감염 경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죽음의 공포」마저도 부족민들이 그들의 유서 깊은 사회적이고 종교적 관습을 따르는 것을 저지하지 못한 것이다.「왜 그것들을 포기해야 하는가?」마게사 신부는 이것이 전통적 관습을 따른 그들의 행동 이면에서 말로 표현되지 않은 외침이었다고 본다.
3, 마게사는 동아프리카에서 토착화의 쟁점의 축이 이동하였다고 진단한다. 마게사는 이상적으로는, 토착화의 공식 노력은 백성 수준의 토착화를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 당국이 백성들의 신앙을 지도하기 위해 안으로부터 명확히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토착종교적 개념들과 신학적 진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전통적 종교관의 지평을 효과적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마게사는 일반 백성의 신앙생활이 토착화에 관한 신학적 사유에 영감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공식 수준의 토착화와 일반 신자 수준의 토착화가 통합되는 과정이 진행될 때에, 사목 실천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것은 일반 신자 수준의 토착화여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의 토착화 정의는 나름대로 음미할 가치를 지닌다.『토착화는 궁극적 분석상 하나의 공동체 사건이다. 토착화의 본질적 성격은 백성의 참여이고 삶의 정향이다』마게사는 이러한 토착화관에 입각해서 일반 신자들 수준으로 이루어지는 토착화가 교회의 토착화 과정에서 결정적 소인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자신이 견해의 타당성을 다음의 진술에서 찾는다.『「구속의 과정은「안으로부터」나오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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