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신부는 나에게 M신부는 소신학교를 졸업하고 북경으로가 그것 신학교 과정을 마쳤으나 상황이 변하자 귀향、교사가 됐다고 말했다. R신부는 또 그는 서품을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면서 결코 결혼을 하지않고 지금까지 성실하게 기다려 왔는데 결국 지난해 서품을 받았다고 설명해 주었다.
성데레사 성당의 경우 앞서 소개한 B신부가 마을을 관장하고 있는 반면 M신부는 주로 본당 사목을 맡고있었다. 그들은 모두 지난 2년내에 사제서품을 받은 50ㆍ60대의 성직자였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동안 CPA평신도 회원 몇명이 우리 주위에 둘러앉았다. 때문에 나는 R신부에게 어떻게 교회가 그토록 황폐해 졌는가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R신부가 그들(CPA 평신도들)을 가리켜 열시만 가톨릭 신자들이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춘」지역에는 모두 11명의 사제들이 있었는데 성데레사 성당에 3명이、나머지 사제들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몇몇 마을은 수백여명의 신자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사제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가정에서 미사를 지내기에 안성마춤인듯 싶었다.
R신부는『그 마을들을 아주 잘 보존되고 있다』면서 변두리 지역에 있는 11개의 선교회 건물들도 새로 단장되였으며 경당도 갖추었다고 설명했다. 현재「장춘」지역에는 신자들이 많이 늘고있다고 말한 그는 지금 중공의 가톨릭신자는 통계에서 나타난 3백만보다 훨씬 많은 4백만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전한 말중 귀가 솔깃한 것은 장춘지역 학교에는 70명의 한국인 교사가 있으며 3천명 가량의 한국인 학생이 취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헤어질때 내가 조그만 선물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정중히 거절하면서『교회가 완성됐을때(복구가 끝났을때를 의) 다시 오십시오. 우리는 당신을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쉬만ㆍ리 목사부부를 만난것은「장춘」에서였다. 나는 호텔의 내방 바로 건너편 방에서 그들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를 소개하기 위해 그들방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한국사람으로「뉴욕」에 살고있었는데 리목사는 장로교회 소속이었다.
그들중에는 중국 철도원복을 입은 젊은이도 있었으며 그는 쉔양 철도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젊은이는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리목사 부부와 함께 중공 북동부 지역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리목사 일행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 국경쪽으로 가려고 경찰에 허락을 요청했지만 인척만이 그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원칙때문에 거절당했다.
리목사는 지금 중공교회는 개신교에 의해 한국어 성서가 출판됐고 새 찬송가도 그해 6월에 발간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또 중공당국의 지배를 받고있는 지역보다 한인 자치 지역의 신자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고있다고 말했다. 그의 영향을 받는것 같다는 것이었다.
리목사는 자기 아버지 역시 장로교 목사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산당에 의해 다를 50명과 함께 살해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부모가 신부들과도 좋은 친구 사이였으며 김일성의 아저씨이자 개신교 장로교회 목사였던 김양욱의 친구이기도 했다고 아울러 전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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