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史劇) 영화나 연속극 등을 보면 임금이 어디를 행차할때는 사람들이 허리를 90도이상으로 구부리거나 땅에 무릎을 굻고 임금이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쳐들지 않는다. 임금이 아니라도 높은 벼슬아치가 지나갈때면 허리를 깊숙이 굽히는 장면을 볼수 있다.
그런 때 만일 뻣뻣이 서서 있다가는 언제 끌려가 고문을 당할지, 혹은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 이유는「높은분」에 대한 태도가 오만하고 불손하다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옛날처럼 무릎을 꿇는것은 보기 힘들어도 소위「높은어른들」과 악수를 하거나 인사하는 장면을 보면 허리가 곧 땅에 닿을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사람이 어떤 대상(對象) 앞에서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는 행위는 그 대상에 대한 최상의 존경과 자기겸손을 드러내는 것이다. 빳빳이 서있는 동작에 비해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거나 무릎을 꿇는것은 그만큼 자신이 낮고 작고 보잘것 없다는 외적표현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외적표현이 마음속과 일치하는 것인지 아니면 표리부동(表裏不同)한지는 그사람 자신이나 알뿐이다.
세상에는 입신(立身)을 위해 이런 동작을 이용하는 부류가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늘높은 줄 모르고 뻣뻣한던 선량(選良)이, 비오는 유세장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하는 모습은 구역질이 나다못해 비참하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에게「무엇을 좀 잘봐달라」는 부탁의 뜻으로 혹은 그사람의 인품이나 덕망에 굴복해 스스로 고개가 숙여진다면 절대자앞에서는 어떻게 될것인가?
오늘날 우리교회내에는 제 2차「바티깐」공의회 이전 신자들과 이후의 신자들이 혼합돼있다. 주교의 반지를 그냥 선채로 친구(親口)한다는것은 불경스럽다고해서 무릎을 꿇었다. 또 성당에 들어가면 양쪽 무릎을 꿇든지 아니면 한쪽이라도 꿇으면서 성체께 인사했다.
공의회 후에는 전례의 토착화 바람과 함께 무릎꿇는 행위는 허리를크게 굽히는 행위로바뀌었다.
그런데 요즘은 성당을 드나들때 무릎을 꿇거나 크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는 신자는 찾아보기 힘들게됐다.
더구나 거양성체때도 뻣뻣이 서있는 신자들이 눈에 뜨인다. 이만큼 자신이 위대해졌다는 건지, 몰라서 그런지 납득이 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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