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올리브산을 내려오시고 따르는 군중은 호산나를 소리 높이 외치며 행렬이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곳은 올리브산 중턱 비탈길이었다. 여기에 이르면 예루살렘 온 도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최근에 복구된 주님의 성전은 외견상 한결 싱싱해 보였고 그 광장과 안마당 하며 경내를 둘러친 성벽, 색색의 돌로 쌓아올린 성전 벽, 부속 건물들을 덮은 금빛 지붕 등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대함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거니와 몇천 년의 역사를 살아온 유대아인들의 자부심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자부심은 이 도성이 다윗의 성도이며, 이곳에 역대 왕들이 묻혀 있고 민족적 혼이 깃들어 있는 도시라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여지 없이 손상 당하고 있었다.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을 모시고는 있지만 성전을 둘러싼 도시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보잘 것 없는 시민의 오두막집들이 대부분이고, 그 군집을 다스리는 높은 궁전들은 이방인 로마의 군주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며 초조하게 이 식민의 굴레를 벗겨줄 구세주 메시아를 목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구원의 왕, 평화를 가져다줄 임금님이 입성하고 계신 것을 그들은 몰라보고 있다. 그들은 구원의 역사에서 구원의 때를 알아보지 못하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들의 왕을 배척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바라다보며 마음이 안타까웠다. 이 심정은 잘못되는 자녀들을 보고 마음 속으로 우는 부모의 심정이며, 빗나간 길을 걷는 당신 백성을 보고 눈물 흘리는 하느님의 심정이다.
이미 기원 전 7세기경 예언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왕들과 그 백성이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을때 하느님의 슬픈 심정을 전한 바 있다 :『너는 그들에게 일러라. 내 얼굴은 밤낮으로 눈물에 젖어 마를 날이 없구나. 처녀인 내 딸 내 백성이 폭싹 무너져버리고 치유 불능의 재앙에 휩싸이는구나. 들에는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 성 안에는 굶고 병든 사람들이 신음하고 예언자들과 제관들은 낯설은 땅에 끌려 가는구나』. 그 후 유다 땅과 예루살렘은 침략자 느브갓네살왕에게 유린되었다(기원 전 597년과 586년).
예수께서도 지금 하느님의 구원을 마다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다보시며 눈물을 흘렸다. 예루살렘에게는 예레미야 때와 같이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도 이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심할 뿐이었다.『예루살렘아, 네가 오늘 평화를 가지고 찾아오는 메시지를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너는 지금 이 날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너희는 눈을 감아버렸으니…』 눈물은 무력함을 느낄 때에 흘리는 법, 마귀도 추방하고 병자도 고치고 심지어는 죽었던 자도 되살리는 힘을 가지신 예수께서 이렇듯 무기력을 느끼신 것은 하느님의 힘도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찌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눈물은 이렇게 흘렀다. 그러나 이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었다. 고집불통으로 끝까지 거역하는 이 도시에게 마지막으로 회개를 호소하는 눈물이었다. 예루살렘은 인류의 죄악사에서 하느님이 혹은 토닥거리고 위로하고 혹은 견책의 채찍질을 해가며 인류 구원의 은총을 쏟아붓는 기나긴 구원의 역사가 점철된 상징적인 도시였다.
오늘의 예수의 입성은 이 긴 구원의 역사를 마감하는 절정의 장을 기록하는 날이다. 그러나 그들은「철도 없이 속절도 없이」(신명 32, 28) 이 평화와 구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 평화의 왕을 잡아 죽였다. 그들은 과거에 똑같은 일을 했고 똑같은 벌을 받은 일이 있다. 이것을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경고하였다.『너를 도와주는 데도 이제는 싫증이 났다. 이제 내가 손을 들어 너를 치리니 너희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예수살렘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약 40년 뒤 기원 70년에 로마의 군대가 이 도시를 짓밟았다. 이것을 예언하는 예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었다.『이제 멸망의 날이 닥칠 것이다. 네 원수들이 사방에 진을 치고 너를 에워쌀 것이다. 그리고 쳐들어와 사방에서 너를 쳐부수고 네 성 안에 사는 성들을 짓밟아버릴 것이다. 그리고 네 성 안에 있는 돌은 돌 위에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는 때를 모르는 척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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