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시대적인 배경,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인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받았던 직ㆍ간접적인 영향,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과의 상관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때로는 역사적인 사건을 주도하며 중요한 몫을 담당했던 당사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역사적인 결과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16세기에 정치,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변혁을 가져왔던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동기와 진행과정, 그리고 루터의 가문과 그의 교육과정 등 성장과정과 그의 종교개혁운동 과정의 관계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의 종교나 사관에 따라서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큰 전기를 가져온 역사적 인물 중의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확실한 자료에 의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이어야 하지 무분별하고 무책임하게 과장된 찬사로 일관하거나 감정적인 선입관으로 터무니 없이 비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즉 종교개혁운동에서의 루터의 개인적인 역할에 대한 평가와 프로테스탄트 개혁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운동을 주도하였던 루터의 개인적인 역할과 개혁운동 자체를 혼합하여 평가할 경우, 루터의 개인적인 결점이 강조될 때 개혁운동의 긍정적인 요소를 과소평가할 수 있고, 또 그와는 반대로 개혁운동의 긍정적인 가치가 강조될 경우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른 과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루터 개인에 대한 평가를 간단히 하고자 한다. 그리고 츠빈글리, 칼빈, 영국 성공회 등의 개혁운동을 살펴보고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운동의 결과와 영향에 대하여 간단히 평가하고자 한다.
루터는 학생으로서 모범생이었고 수계생활에서도 충실한 신앙인이었다. 이러한 그의 수계생활은 학창 시절에서도 계속되었고 아우구스티노 수도생활에서도 계속되었다. 당시 신심 깊은 신자로서는 당연했지만, 지나치리만치 엄격한 도덕적인 가훈으로 신앙교육을 받아 소위「정통적인 신앙인」으로 성장하였다. 그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이곳은 맥주집이 아니야!』라는 말로 학생들의 무질서함을 타이르며 아주 엄격한 윤리의식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에 의해서인지, 그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압도되어 자비의 하느님보다는 엄격한 정의의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인간의 가치가 지극히 축소되고 이에 따라 인간의 선행도 구원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섭리와 그분의 구속사업에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이 인간의 모든 면에 깊이 침투되기를 바랬다. 그는 억압 받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옹호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수도생활 초기에는 교회에 대한 신뢰심도 깊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가 가장 신랄하게 비난했던 대사에 대해서도 사제생활 초기에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이미 소개한 대로, 그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 자기 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만일 부모가 세상을 이미 떠났다면 자기가 로마에 있는 기회에 대사의 은혜를 받아 연옥에 있을지도 모를 부모에게 양도하여 바로 천국에 오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다소 소홀히 하였던 하느님 말씀인 성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이로 인해 가톨릭 신학자로 하여금 성서를 더 깊이, 더 열정적으로 연구하게 자극을 주었다. 또 당시 형식적인 면이 많았던 신앙생활에 연성적인 가치를 불러일으켜 신심생활에 쇄신을 가져온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결점과 전체 교회에 끼친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로르츠(Lortz)는 루터를「격정으로 가득 찬」인물로 평가하였다. 프로테스탄트 사가인 하우스라트(Hausrath)는 루터를 그의 저속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므로써 당시대의「가장 저속한 필자」라고 혹평하였다. 후기에 와서 루터는 유혹으로 인한 영적 갈등과 고민을 호소해오는 신자들에게「먹고, 마시고, 대화하도록」권유하는 등 인간적인 방법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때도 있어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그가 크게 지적 받고 있는 결점의 하나는 극복할 수 없는 자기 과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일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적인 사명이라는 확신을 모든 행위의 원리로 삼고 행동하였다. 신도 각자가 성서의 말씀으로 계시를 받아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으므로 교회의 교도권이 불필요하다고 가르쳤지만, 정녕 그의 가르침에 따라 그와 견해를 달리할 때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주장하였던 교리의 내용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상호 모순되는 점들도 지적되고 있다.
물론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와 동기는 참으로 좋았고 또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결점과 한계점, 유명론적인 교육의 영향,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인 사랑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교회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큰 죄악인 분열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에게 모든 잘못을 송두리째 떠넘길 수는 없다. 당시의 교회가 참으로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지 못한 탓도 적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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