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성원 한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온 가족이 마치 열병을 앓는 것처럼 평생을 살아가는 한국의 실정에서 김경아(안젤라ㆍ27세)씨 가족은 여러모로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김경아씨는 현재 서울시 미아2동에서 아버지 김수옥(58세)씨와 어머니 허경숙(스텔라ㆍ57세)씨와 언니와 동생이 함께 밝은 모습으로 살고 있어 이웃은 물론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인 가정에 좋은 표양이 되고 있다.
뒤틀린 온 몸 중 왼발만을 사용할 수 있는 경아씨는 이 한쪽 발로 못하는 것이 없다. 왼발로 붓을 집고 성모님의 따뜻한 미소를 그리는 경아씨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하얀 캔버스를 향하는 경아씨의 모습에는 외로움도、슬픔도 아닌 기쁨이 넘쳐흐른다.
◆가정 불화 상상 못해
『이렇게 맑은 날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불만』이라고 말하는 경아씨는『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정말 좋다』고 진지하게 힘주어 말했다. 생후 백일이 지나도 고개를 가누지 못해 이상히 여겨 병원에 데리고 갔으나 난데 없는 뇌성마비 진단을 받아야 했다고 회상하는 경아씨의 어머니들은 어려움 가운데도 경아와 더불어 기쁘게 십자가를 함께 지며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장애인을 둔 가정이 대부분 가정 불화가 잦고、형제들도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는 게 일반적인데 경아씨 가족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경아씨의 언니와 동생들은 친구들을 일부러 집으로 초대해、경아씨와 함께 놀기를 즐기고 있다. 말 한마디 하려고 해도 온 몸을 움직여야 하는 동생을 마냥 자랑스러워 하는 경아씨의 언니들에게 경아는 하늘이 내려준 천사다.
경아씨의 어머니는『야외에 나갈 때 경아랑 같이 가면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게 창피해 애 아빠에게 데려가지 말자고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고 그러나『오히려 애 아빠와 형제들이 꼭 경아와 함께 갈려고 야단』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보인다.
『경아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간다는 것은 엄두가 안나 망설이다 대한항공에 문의를 했는데 오히려 너무 친절하게 잘해줘 어쩔 줄을 몰랐다』는 허경숙씨는『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이를 집에만 가두지 말고 자꾸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아이는 물론 부모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동양화 학습에 심혈
이런 온 가족의 노력과 사랑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만끽하며 사는 경아씨는 성모님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성모님 중에서도 치마 저고리를 입은 성모님을 즐겨 그리는 경아씨는 앞으로 로마 대성당에서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고 있다. 또 경아씨는 동양화에도 관심을 갖고 현재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 나가 동양화를 배우고 있다.
경아씨는『치마 저고리를 입은 성모님이 우리들에게 더욱 모성애를 느낄 수 있게 한다』고 말하면서『제 소원이 있다면 아빠도 세례를 받고 성당에 함께 나가는 것』이라며 입을 꾹 다문다. 현재 경아씨의 가족 중 경아씨와 어머니만이 성당에 나가고 있다.
경아씨는 또『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 집에서만 있지 말고 무엇이든지 해볼려고 시도했으면 한다』고 당부하고『그림 그리기、컴퓨터 등 자기 생각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행복이 저절로 찾아온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몸을 뒤틀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 경아씨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망울 속에는 사랑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다.
아이를 낳자 기형아라고 해서 버리는 부모들、아니 뱃속에 있는 태아가 잘못됐다고 해서 쉽게 지워버리는 세태에 사는 우리들에게 경아씨 가족이 주는 의미는 더욱 크다. 또 아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 영역을 넓혀가는 김경아씨의 삶 또한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실제로 경아씨의 집에는 장애인을 둔 부모들이 자주 찾아와 상담을 하곤 한다.
◆이웃 장애인의 귀감
성모님을 그리는 것이 제일 즐겁다는 경아씨는 요즘 제대를 하고 돌아온 동생 근기군에게 컴퓨터를 배우느라 열심이다. 컴퓨터 통신을 통해 집 밖의 세상 소식을 접하고、친구들과 마음껏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경아씨 스스로의 노력이 그녀의 가족을 밝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에 대한 불타는 정열을 가슴 속에 감싸안은 채 경아씨는 뒤틀리는 몸을 애써 다잡아 외발로 성화를 그리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그녀이지만 경아씨는 수도 놓고 전자 오르간으로 캐롤송을 연주하기 한다.
그림을 그릴 때면 힘든 줄도 모르고、외로움도 잊어버린다는 김경아씨와 항상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녀의 가족들은『장애인들을 특별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 달라』고 입을 모으면서『그냥 길거리를 지나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보아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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