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만 인파가 무심히 지나치는 서울 종로 거리가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신앙 선조들의 보혈과 숭고한 순교의 얼이 배어있는 곳이라면 믿어지겠는가?
사실 서울 거리만 해도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1백년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박해의 세월 동안 신앙 선조들의 얼과 흘린 피가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순교 역사의 보고가 곳곳에 즐비하다.
그 중 1백3위 한국 순교 성인 시성 10주년을 맞은 지금 특히 기억할 만한 곳은 바로 오늘날 종로 거리에 있던 포도청과 의금부, 감옥 터이다. 이곳이 바로 수만 명의 한국 순교 성인을 탄생시킨 묘판이기 때문이다.
순교의 관문 포도청. 척사윤음으로 대역죄로 체포된 신앙 선조들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관문이다. 이곳에 끌려온 신자들은 갖은 고문과 옥고를 치르면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조선 후기 한성의 치안 업무를 담당했던 기관은 한성부、오부、의금부、훈련도감、어영청、포도청 등이었으나 그 중에서도 중심 역할은 주로 좌우포도청이었다.
우포도청은 현 서울 종로구 종로 1가 89번지 동아일보사 일대인 서부 서기방 혜정교 남쪽에 있었다.
▲순교의 관문 포도청
좌포도청은 현 종로구 수은동 56번지 단성사 일대인 중부 정선방 파자교 동북쪽에 위치했다.
좌우포도청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합되어 경무청이 설치되면서 그 흔적도 없으며 현재 우포도청 건물이 언제 누구에 의하여 이건됐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서울 성북구 돈암동 512의 60번지에 이건되어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우포도청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 특별 사법기관인 의금부는 전 왕권의 확립과 유지에 필요한 일체의 반란 및 음모、난언을 처단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주로 외국인 범죄와 양반 관료들의 범죄를 취급했다.
임금의 특지를 받은 의금부는 조선사회 기반을 뒤흔든 국사범、반역 모반죄인으로 천주교회 지도자들을 다스렸다.
의금부에서 추국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의 이승훈、이가환、이기양、강이천、황사영、주문모 신부 등과 1839년 기해박해 때의 성 유진길、정하상、조신철、앵베르 주교、모방、샤스탕 신부、1866년 병인박해 때의 성 남종삼、홍봉주 등이 있다.
▲반란 음모 난언 처단
의금부 재판에 의해 순교하거나 유배를 당한 지도급 교회 인사들은 병인박해까지 그 맥을 잇고 있지만 1839년 기해박해 이후로 포도청에서 바로 재판을 받고 형이 집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로는 당시 양반 신분제의 몰락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집권 양반층의 지도급 교회 인사들이 거의 순교하고 없었을 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의 신분이 급속히 강등되는 과정에서 조정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국사범이 아닌 일반 잡범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남종삼 성인 순교
이러한 경향은 1846년 병오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에게 잘 나나타고 있다. 특히 병오박해 때 좌포청에 수감됐던 김대건 신부와 병인박해 때 우포청에 구금됐던 베르뇌 장 주교와 도리、볼리외 신부의 경우를 보면 그 양태가 뚜렸하다.
김대건 신부의 경우 조정에서 볼 때 한국인 최초의 신부며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엄청난 대역죄를 지었음에도 의금부에서 국사범으로 재판 받지 않고 좌포청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군문효수됐다.
특이한 것은 김대건 신부의 처벌을 놓고 어전회의까지 진행하면서도 의금부로 이송하지 않고 일반 잡범을 다루는 포도청에서 형을 집행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시 조정의 의도를 냉철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병인박해 때 서양 선교사이 베르뇌 주교와 도리 신부、볼리외 신부가 체포되어 우포도청에 갇혀 있으면서도 의금부에 가서 실형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같은 박해 때 남종삼 성인과 순교자 홍봉주가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고 베르뇌 주교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되던 1866년 2월 23일 서소문 밖에서 함께 순교했다는 점은 더욱 서양 선교사들의 심문에 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불법적 형 집행 난무
포도청 형 집행부에 기록되고 군문효수될 만큼 이들 서양 선교사들의 순교가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법 집행이 된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교회 사학계의 연구는 분명히 이뤄줘야 할 것이며 한국 천주교회 순교사 연구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선 이조 왕조실록의 철저한 고증이 요구된다 하겠다.
한편 이들 외에도 1801년 신유박해의 기록인「사학징의」와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등을 보면 무수한 신앙 선조들이 포도청에서 고문을 받고 유배를 떠나거나 형을 받고 순교의 형장으로 간 증언이 나온다.
무심히 지나쳐왔던 서울 종로 거리. 한국 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1백년 간의 피흘림과 얼이 어려 있는 이 거리를 지날 때 옷깃을 여미고 한 번쯤 순교자들의 그 놀라운 삶을 살아보리라 다짐하자.
◆성 남종삼(요한) - “러시아 남침 위험” 방아책 제시 순교자 4명 배출한 명가 출신
성 남종삼(요한)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자 홍봉주와 함께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참수형을 받고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정월 21일(음력) 순교한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중 한 분이다.
베르뇌 장 주교와 다블뤼 주교 등 병인박해 때의 대표적 순교 성인 중 한 분인 남종삼 요한은 본관이 의령인 양반 가문 출신의 승지직을 지낸 고관 관료였다.
고종 초 왕족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그가 천주교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부친 남상고의 영향 때문이었다.
성 남종삼 요한은 19세기 중엽 러시아 제국이 남침 야욕을 보이자 흥선대원군에게 자신의 신변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와 교회를 위해「이이제이 방아책」을 제안했다.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 세계적 차원에서 난국 타개를 모색하자는 이 방아책은 국태민안의 결의와 신앙의 장를 구현하겠다는 남종삼 성인의 복안이 깔려있다.
남종삼 성인의 방아책에 흥선대원군이 내락했으나 공교롭게도 이때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부주교가 지방으로 사목 방문을 떠나 회동이 실현되지 못했다.
서양 선교사와의 조속한 회동을 기다리던 흥선대원군은 러시아의 월경이 잠잠해지면서 북변의 긴장이 완화되고 반 대원군 정객들이 자신의 천주교 접근책을 탐지하고 정치적 공세를 펴자 사상 초유의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병인박해이다. 병인박해가 터지자 곧장 체포령이 내려진 남종삼 요한은 배론 신학교에서 성사를 본 후 상경하다 포졸들에게 체포、의금부로 압송됐다.
의금부에 구금된 남종삼은 자신을 도와 방아책을 올렸던 홍봉주 이선이 최형 정의배 전장운 등과 함께 온갖 문초를 당했다.
그러나 남종삼 요한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국사가 어려울 때 일신상의 안전만을 위하여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앞에 나서서 국가의 안정과 새 역사의 추진을 위해 러시아 남침의 위험을 경고하고 그에 따른 방아책을 제시했으며 개방을 추진하였음』을 거듭 밝혔다. 또한 남종삼은『천주교는 결코 사교가 아니다』고 신앙 고백을 했다.
남종삼 성인은 의금부로부터 요언으로 세인을 현혹하고 모배잠종의 죄로 참수형을 받고 홍봉주(토마스)와 함께 향년 50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남종삼 성인의 순교로 충주 부사를 지낸 남종삼의 부친 남상고는 공주 진영으로、장자인 남규희는 전주 진영으로 잡혀가 각각 순교했다.
아울러 남종삼 성인의 처 이소사와 차남 남명희와 두 딸은 용좌 죄인으로 경상도 창녕으로 유배되어 노비생활을 했다. 그 후 이소사도 유배지에서 순교함으로써 남종삼 성인의 가문은 3대에 걸쳐 그 자신을 포함해 4명의 순교자를 배출했다. 1968년 10월 6일 24위 병인 순교자 시복으로 복자가 된 남종삼 요한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984년 5월 6일 103위 한국 순교 복자 시성으로 성인위에 올라 세계 가톨릭 교회의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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