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바티깐」공의회는 계시헌장 6항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하느님이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이것은 이미 1차「바티깐」공의회에서 완전하게 제시한 가르침이다. 또한 그것은 신약과 구약에 뿌리 박고있는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성바오로는 로마서에서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1、19-21참조).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어느 정도의 본질、완전성、속성까지도 알 수 있다. 볼 수 없는 하느님이『그분이 만드신 것들을 통해 알아 볼 수 있게』되는것이다. 구약에서는 지혜서가 바오로 사도와 같은 가르침을 선포하고있다.『…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보아 우리는 그들을 만드신 원작자를 알 수 있다…』(지혜서13、1-9) 인간이성은 하느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고 피조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성으로 하느님을 알아내도록 피조물속에 하느님에 관한 영원한 증거를 남겨놓았다. 이것은 이성을 주신 하느님의 계획과 조화된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오류없이 하느님께 도달하기는 어렵다.
◆ 두가지 아는 방식
하느님께서는 창조물 속에 당신에 관한 증거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인간은 그 증거를 주의깊게 꾸준히 읽음으로써 하느님께 접근한다. 따라서 피조물에서 출발하여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방식(상승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렵고 잘못될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시고 당신 자신을 알려주었다. 피조물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당신을 알게 해 주셨다. 이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방식(하강방식)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 계시다.
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당신의 깊은 뜻과 구원 계획을 계시하신다. 이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구원계획은 인간이 이성으로 추리해서 알 수 없다.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하느님은『인간을 당신과 사귀도록 부리시고 받아들이신다』(계시헌장2참조) 이러한 하느님의 계시를 참된것으로 받아들이는데서 믿음이 이루어진다.
◆ 계시는 발전적으로
하느님은 말씀과 업적(행위)을 통해 계시하신다. 말씀하신 것을 행위로써 확고히 하신다. 이 계시는 인류 역사 시초부터 차츰 발전되어왔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계시하시지 않고 인간이 깨달을 수 있도록 차츰 계시하셨다. 이것은 하느님다운 교육방법이다.
인간을 초자연적 계시에 한 발짝씩 인내스럽게 끌어들이면서 점진적으로『자신을 건네주신다』계시헌장은 3항에서 이 점진적 계시를 말하고있다.『원조들이 타락한 후에 구속을 약속하시어…예정한셨던 때에 아브라함을 부르시어…그리고 성조들을 통하여 이 민족을 가르치시고…약속된 구세주를 기다리게 하셨다』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정상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이는 아버지를 본다. 예수님은 당신의 현존으로、말씀과 업적으로、부활과 성신의 파견으로 계시를 완수하셨다.
◆ 믿음은 전인의 응답
이러한 계시를 전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앙을 이해할 수 있다. 믿음은 하느님의 계시를 참된것으로 받아들이는 전인의 응답이다.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의 뜻을 계시하실 때 인간은「믿음의 순종」을 보여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믿음의 순종」을 통해 전인이 하느님께「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굴복」을 보여드린다.
그 계시 진리에 자유로이 동의함으로써 자유로이 자신을 하느님께 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 속으로 인간을 이끌어들인다. 구원의 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하느님께 의탁하는 정도에 따라 믿음의 응답이 올바르게 된다. 인간이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을 던지는 것이 합당한 응답이다. 거기서 신앙의 굴복이 표현된다. 하느님은 계시하시면서 자신을 선물로 건네주신다. 인간은 자신을 선물로 드림으로써 하느님께 응답한다.
◆ 신앙의 독창성
피조물을 통해 이성으로 하느님을 아는 간접적 지식과 신앙을 통해 하느님을 아는 직접적 지식은 서로 다르다. 이 둘을 비교할때 신앙은 독창적이다. 신앙으로 아는 지식은 초자연적 지식이므로 독창적이다. 이 초자연적 지식은 무한한 행복에 대한 갈망과 성취、「영원한 삶」에 관계된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기능과 능력을 초월한다. 이 인간의 기능 밑바닥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은총이라 부른다. 이 믿음의 은총은 믿음의 행위에 앞선다. 은총은 신앙 행위를 불러일키으고 지탱해주며 안내한다. 앞서서 협조하는 은총의 힘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상호인격적 초자연적「통교」가 확립된다.
신앙은 인간적 독착성도 갖고 있다.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행위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성과 자유를 가진 인간풍위에 부합한다. 신앙은 자유 의지의 행위로써 계신진리에 대한 확신을 표현한다. 신앙이 자유로운 행위라는 말은 신앙을 선택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무관심의 자세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인간은 하느님의 초대와 선물에 전인의 자유로운 매달림으로 응답하도록 부름받고 있음을 뜻할 뿐이다.
신앙은 또한 양심의 문제다. 일단 진리를 파악한 이상 그것에 고착하여 진리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전 생활을 정리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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