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지체장애를 신앙으로 극복, 조금이라도 밝게 살아가려는 지체장애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있는 김정례씨(59세ㆍ크리스티나).
서울 지체장애자모임인「마오로선교회」의 실질적인 중추역을 맡아「어머니」로 불리우고 있는 김정례씨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소박한 대화로 자칫 좌절하기 쉬운 지체장애자들에게 새삶의 의욕을 불어놓어주고있다.
배운것도 남달리 많지않고 왼쪽다리에 의족을 대 몸은 불편하지만, 김정례씨는 직장인 세브란스병원 의수족부에서 날마다 만나는 지체장애자들에게도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활짝 열어보이며 다정한 친구로, 어머니로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김정례씨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꿈이 아름답던 스무살에「육종암」으로 왼쪽다리를 절단했던 김정례씨는 이어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을 맞아야했다.
밀어닥친 고통들을 혼자힘으로 이겨내기에는 벅찬것이었고, 같은 장애자를 배우자로 맞아 장애의 고통을 부부애로 승화시켜보려던 그녀의 꿈도 깨어졌다.
종교가 달랐던 남편과의 어려운 결혼생활을 인내로 극복해낸 김정례씨는 이 모든 고통을 자신이 부족한 탓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련으로 받아들였고, 오로지 보속한다는 일념으로 고통을 이겨냈다.
다리를 다치기 전인 1941년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서 간호보조원을 지냈던 김정례씨는 57년 현재의 직장인 세브란스병원 담당자였던 토리박사의 격려를 받으면서 의수족부에 근무, 다시 사회에 복귀했다.
김정례씨의 사회복귀는 당시 원만하지 못한 가정, 2남2녀의 자녀교육, 그리고 장애에 따른 피로의 3중고를 재활하려는 자신의 열의와 주위사람들의 격려로 극복해낸 땀과 기도의 결실이었다.
지금까지 18년동안 외수족부 접수와 환자관리를 맡고 있는 김씨는 이곳을 찾는 지체장애자들의 격의없는 상담자 역할을 해냈으며 81년부터는 교구 사회복지회 장애자복지부에 연결돼 신자장애자들과도 형제애를 나누게됐다.
82년 당시 침체돼있던 지체장애자 모임인「바오로선교회」에 가입한 김정례씨는 서먹서먹한 회원들간의 친목을 자담하고 나섰다.
몇명 안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회원들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체험을 나눈 김정례씨는 조그만 선물을 나누는 등 나눔의 가교를 놓기 시작했다.
같은 지체장애자인 김씨의 마음을 연 대화는 자칫하면 좌절하기 쉬운 젊은 청소년장애자들의 마음에 다시없는 위로와 격려가 돼「바오로선교회」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때론 따끔한 충고도 마다하지 않는 김씨를 회원들은 친어머니처럼 여겨「어머니」라고 부르게 됐고 이들의「어머니」김정례씨는『자신을 바로 받아들일 때 고통은 기쁨으로 승화된다』고 장애자 들에게 충고의 말을 잊지않는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든 장애자들이 믿어야 한다』며 꾸준한 노력을 당부하는 김정례씨는『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다른 장애자들을 볼 때마다 나의 고통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음을 절감한다』는 김씨는 지난 5월 장애자주일에 서울대교구에서 수여한「공로패」가 왜 자신에게 시상됐는지 아직도 부끄러울 뿐이라고.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